나에게 부족함은 결핍이 아니라,나를 지켜낸 윤리였고 삶의 기준이었다
이제 인생을 돌아볼 만큼의 나이가 되었다.
청소년기, 청년기, 성년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를
조용히 되묻게 된다.
돌아보면 내 삶에는 언제나 부족함이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나는 늘 충분하지 않았다.
부족함을 나열하라면
아마 누구보다 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그 부족함이 나를 무너뜨렸는가,
아니면 오히려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가.
부족함을 알았기에, 다른 길로 가지 않았다
살아오며 나는 늘 부족했다.
그래서 더 조급해질 수도 있었고,
그래서 더 쉽게 타협할 수도 있었다.
특히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나는 수없이 많은 유혹 앞에 서 있었다.
돈, 술, 인간관계라는 이름의 유혹들.
그때 나는 이미 가장이었고,
아내와 아이들을 포함해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돈이 부족하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내는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스스로 대학원을 택했다.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던 아내는
노인복지학이라는 또 다른 길을 선택했고,
졸업 후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27년을 한 직장에서 성실히 일했다.
우리 부부는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부족함을 견디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는 부족함을 물질로 메우지 않았다
시사 프로그램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유혹으로 가득하다.
정보와 권한이 쌓이는 곳에는
항상 부정의 그림자가 따라온다.
그러나 나는
그 부족함을 돈으로 보상하려 하지 않았고,
비리나 편법으로 메우려 하지 않았다.
32년의 방송국 생활 동안
그 흔한 접대 한 번 받지 않고 나왔다.
유혹을 피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제보자 외에는
개인적 만남을 일절 만들지 않았다.
일면식이라도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방송을 통해 고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 삶은 단순했다.
출근, 현장 취재, 편집, 방송.
그리고 다시 출근.
30년 가까이 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부족함은 나를 흔들지 않았다
그 시절에도
부족함은 여전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부족함을 넘어서기 위해
내가 나를 무너뜨린다면
결국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부족했지만 흔들리지 않았고,
유혹 앞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한 가지 분명한 신념이 있었다.
나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
부족함은 나에게 ‘족함’이었다
이제 인생의 2막, 노년에 들어서서야
나는 이 말을 할 수 있다.
나에게 부족함은 결핍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세우는 기준이었고,
내 삶의 윤리였다.
부족함이 있었기에
나는 스스로를 경계했고,
부족함이 있었기에
쉽게 가지 않았다.
부족함이 나를 키웠고,
부족함이 나를 지켰으며,
부족함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한다.
나에게 있어 부족함은 곧 족함이었다.
지금, 나는 부족함 덕분에 자유롭다
이제 나는
내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은 없지만
남들보다 덜 잃었다는 자부는 있다.
부족함을 핑계로
내 가치를 팔지 않았고,
내 윤리를 내려놓지 않았으며,
내 삶의 방향을 흐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면
이 생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부족함은 나를 괴롭혔지만
결국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나를 붙들어주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부족함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부족함은 나를 넘어뜨린 것이 아니라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