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이 처음 맛본 실패의 시간
그때 나는 열아홉이었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나이.
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영도까지 가서 하나도 팔지 못하면 어떡하지.
버스비만 날리는 건 아닐까.
그 걱정이 좌석에 앉자마자 나를 꽉 붙잡았다.
나는 지구레코드 영업사원이었다.
팔아야 먹고사는 일이었다.
팔지 못하면 그날은 그대로 공백이었다.
오늘 가는 곳은 태종대 바닷가, 곤포의 집.
관광객이 많고, 신혼부부도 자주 찾는 곳이라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영업은 원래 약속부터 잡는 게 순서다.
전화하고, 날짜 잡고, 만날 사람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열아홉의 나는 묘하게도
‘그냥 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믿었다.
이상한 자신감, 아니면 마지막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만덕터널을 지나 서면으로 가는 버스 안.
냉방도 없는 여름이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 안은 숨이 막혔다.
별별 냄새가 섞여 올라왔고
나는 가방 속 레코드 판을 괜히 한 번 더 만져보았다.
‘영화음악 100선’.
그날 나의 전부였다.
입사한 지 두 달 남짓.
요령도 없고, 실적도 없었다.
이번 달도 계약을 못 하면
팀 사람들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울 것 같았다.
친구들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을 나이였지만
나는 이미 집의 생계를 생각해야 했다.
열아홉의 마음엔 그게 너무 무거웠다.
서면에서 내려 다시 태종대 가는 버스를 탔다.
점심시간을 피하려 오후 두 시쯤 도착할 계산이었다.
창문을 열어도 시원한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영도다리를 건너며
가슴이 쿵쾅거려 숨이 가빠졌다.
버스에서 내려 양복을 정리했다.
영업사원이라고 입은 유일한 양복.
지구레코드 배지는 제대로 달렸는지,
옷은 구겨지지 않았는지 몇 번이나 살폈다.
곤포의 집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스무 개 남짓이었지만
그날따라 내 인생 전부처럼 느껴졌다.
관광객들은 즐거워 보였다.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
식사를 하며 웃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며
‘사람 사는 건 저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자 분 좀 뵙고 싶습니다.”
직원들은 너무 바빴다.
영화음악 음반을 소개하러 왔다고 하자
“지금은 어렵다, 다음에 오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때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정사정을 했다.
결국 부장이라는 사람이 나왔다.
할부 금액, 보너스 음반,
심지어 내가 받을 수당 일부를 포기하겠다는 말까지
열아홉이 가진 모든 걸 꺼내놓았다.
“기다려보세요.”
그 한마디에 나는 희망을 걸었다.
30분.
1시간.
2시간.
3시간이 흘렀다.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그 말 하나가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짧았다.
“부장님이 급한 일이 생겨 나가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하네요.”
저녁이 되자 바다의 파도가 거세졌다.
사람들은 하나둘 태종대를 떠나고
곤포의 집에서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가 왜 그렇게 슬펐는지
열아홉의 나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가슴이 먹먹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은 친절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가보는 마음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날 태종대까지 간 버스는
아무것도 팔지 못한 하루였지만
열아홉의 나를 조금 단단하게 만들었다.
넘어져도 다시 가게 만드는 힘,
그 힘은 그때 이미
내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