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돌아보는 시선, 행복의 조각들

한 해를 배웅하며

by 최국만


한 해를 지나며

이제 1주일도 채 남겨 놓고 있지 않다.


어제 2025년 1월이 시작된 것 같은데,

세월은 유수 같다더니

그 말이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가온 해도 드물다.


올해의 나는 크고 요란한 성취보다는

작지만 선명한 순간들로 기억된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기종이와 나 사이의 눈빛이다.

말이 필요 없는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이렇게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올해에서야 제대로 배웠다.

같이 야외로 나들이를 나가고, 병원을 오가고,

잊고 지냈던 고등학교 동창을 찾아주던 날까지

그 모든 순간은 ‘돌봄’이라는 단어를

책이 아닌 삶으로 이해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올해의 대미를 장식한 장면도 있다.

41살 청년의 스스럼없는 웃음.

나이와 상황을 넘어

그저 웃고, 놀고, 아무 계산 없이 마음을 나누던 시간.

그 순간만큼은

이 시대가 강요하는 역할도, 책임도 잠시 내려놓고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8월 말,

아내의 항암치료가 종료되었다.

그 소식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다시 기대하고, 다시 꿈꿀 수 있다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품어본 희망은

요란하지 않았기에 더 단단했고,

당연한 일상이 얼마나 기적 같은지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큰 딸과 함께한 중국 태항산 여행도

올해를 특별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아빠와 딸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생각과 침묵을 존중하는 동행자로서

산을 오르고, 내려오며 나눈 시간.

그 여정은 여행이라기보다

서로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유의 시간에 가까웠다.

말보다 침묵이 많았고,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는 세계로 들어온 것도

올해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영상이라는 익숙한 언어를 떠나

문장으로 마음을 옮겨 적는 일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의 이동이었다.

속도를 늦추고, 생각을 붙잡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

이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에 말하기보다

먼저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세밑에 돌아보는 나날들은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 시간들은 행복의 조각들이었고,

그 조각들이 모여

올해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 시대는 여전히 빠르고, 불안하고, 비교를 멈추지 않는다.

그 속에서 내가 붙잡은 것은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깊이 느끼는 삶이었다.

눈빛 하나, 웃음 하나, 여행의 침묵 하나가

한 해를 충분히 살아냈다고 말해주는 증거가 되었다.


세밑에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미래를 향한 조급함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에 머문다.

유수처럼 흘러간 시간 속에서도

이만큼의 사랑과 희망을 품고

오늘까지 도착한 나와 우리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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