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머무는 집

기종이와 함께한 겨울 산길

by 최국만


하늘 아래, 산 밑에 집이 있다.

기종이의 집이다.

겨울이면 바람이 몰아쳐 집이 흔들리고, 산은 숨을 죽인 채 눈을 맞는다.

올겨울, 처음으로 기종이네 산동네에도 눈이 내렸다.


이곳은 지금도 오지라 불린다.

그렇다면 40여 년 전, 기종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기종이 어머니와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고생이요… 말도 못 해요. 물이 없어서

저 밑에 마을까지 걸어가 우물물을 길어 왔어요.”


한 시간 남짓,

첩첩한 산골로 시집와 살아온 시간과

기종이를 키우며 견뎌야 했던 삶의 이야기들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집은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동네 목수의 손길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무너져 가는 집만큼이나

어머니의 삶도 고단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음에 자꾸만 걸렸다.


“기종아, 눈 온다.

우리 눈 맞으며 산으로 살살 걷자.”


기종이는 장갑을 끼고 산길에 섰다.

아내가 사 준 가죽장갑이다.

나에게도 올겨울 첫눈이었다.

눈발을 맞으며 걷는 길이 상쾌했다.


기종이도 눈을 좋아할 것이다.

말로 다 할 수는 없어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눈에 대해, 바람에 대해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산으로 오를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눈은 더 굵어졌다.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기종이가 가지를 흔든다.

날리는 눈을 보고 싶어서였을까,

어릴 적 기억의 잔상이 남아서였을까.

그는 여러 번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나는 안다.

봄이면 새싹을 한참 들여다보고

가을이면 단풍잎을 주워 드는 그 모습이

기종이만의 어린 감성이라는 것을.


눈이 오는 오늘,

기종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눈 이야기뿐 아니라

나의 삶 전체를 꺼내 놓고

함께 웃으며 걷고 싶었다.


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기종이를 만났다.

하지만 이제 이 만남은

내 삶의 축복이 되었다.

그 축복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기종아, 눈이 너무 많이 온다.

내려가자.”


산길 옆 냇가를 따라

내가 냇가로, 기종이는 안쪽으로 걷는다.

손을 꼭 잡고 내려온다.


아내는 지난겨울을 떠올리며

기종이와 어머니에게 장갑을 사 주었다.

그 장갑을 끼고

기종이는 나의 손을 잡는다.


멀리서 집이 보인다.

스레트 지붕 위에

하얀 눈이 제법 쌓였다.

세상은 온통 하얗다.


기종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고 아프다.

그래도 이 집은

기종이의 행복의 집이다.

하얀 집처럼

기종이의 마음도 하얄 것이다.


올겨울,

얼마나 많은 눈이 더 내려

이 집 위에 하얀 꿈가루를 뿌릴까.


근무를 마치고 돌아서는 내 시선은

끝내

기종이의 하얀 집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