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의 불안, 남는 사람의 두려움

기종이 어머니의 한숨에서 시작된 질문

by 최국만

제1편

퇴근을 하려던 늦은 오후였다.

기종이 어머니가 집에 돌아왔다.

그분은 늘 그렇듯,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에게 약한 지적장애와 대인기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늘 한 가지를 본다.

아들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


나는 오랜만의 반가움에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며 “예, 그저 살려고 일하죠.”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나는, 마음속 깊은 질문 하나를 꺼냈다.

“어머니, 요즘 몸도 편찮으시다 들었는데…

혹시 나중에 어머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기종이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 순간, 공기가 멈춘 듯했다.

짧은 침묵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죽으면… 모 어떻게 하겠어요.

동생도 자기 살기 바쁘고,

결국 시설에 보내야지요.”


그 말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옆에 있던 기종이도 그 말을 들었다.

지능은 초등학생 수준이라 했지만,

그 순간 기종이의 눈동자는 잠시 흔들렸다.

아마 그는 어머니의 말속에서

무언가 ‘불안한 그림자’를 느꼈을 것이다.


기종이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은요, 내가 먼저 죽기 전에

기종이가 먼저 갔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가 죽으면, 그 애를 누가 거들떠나 보겠어요.”


그녀의 말은 한겨울 찬바람처럼 내 가슴을 얼게 했다.

그 얼굴에는 70년 세월이 만든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고,

노동으로 굳은 손마디에는 삶의 절망이 묻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말처럼,

그녀는 남편의 폭행으로 척추를 다쳤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들을 놓지 않고 살아온 세월,

그건 고통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그녀는 내게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기종이가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

나 죽거든… 우리 기종이를 좀 데려다 같이 살면 안 될까요?”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듯했다.

그건 부담이 아니라,

그녀가 평생 짊어져 온 삶의 무게가

한순간 내 어깨 위로 옮겨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날 밤, 괴산의 도로를 홀로 달리며

계속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을까?

그녀는 언제까지 이 짐을 혼자 짊어지고 살아야 할까?’


장애인을 둔 부모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이별의 예행연습’이다.

오늘의 밥을 함께 먹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먼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 불안은 밤마다 찾아와

가슴 한켠을 짓누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 후에는 누가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줄까?”

복지제도도, 시설도, 행정도

그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는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함께 살아주는 사회를 바란다.

그 바람은 제도적 시혜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다.


기종이 어머니의 한숨은,

이 나라 수많은 부모의 한숨이다.

그녀가 바랐던 건 돈도, 명예도 아니다.

단 한 가지,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세상.


그 소박한 바람조차 아직도 우리 사회는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기종이를 본다.

그의 미소는 여전히 순하고 맑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한 어머니의 숨결이 있다.


나는 다짐한다.

돌봄은 부모의 몫이 아니라,

사회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그 약속이 지켜질 때,

떠나는 이들의 불안과 남는 이들의 두려움이

조금은 덜해질 것이다.


밤이 깊다.

문득, 기종이 어머니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선생님, 나 죽거든 우리 기종이 좀 데려다 같이 살면 안 될까요…”


그 울림이 내 안에 아직도 머문다.

그건 한 개인의 부탁이 아니라,

한 사회를 향한 절박한 질문이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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