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 법주사에서 만난 행복

종소리와 한 권의 책이 가르쳐준 삶의 방향

by 최국만


새벽 3시, 속리산 법주사 경내에

나지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여름 한가운데였지만 새벽 공기는 차갑고,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고요를 깨우며 내 마음속까지 스며들었다.


우리는 경내 곳곳에 카메라를 세우고

스님의 새벽 도량정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어스름한 경내에 승복 자락이 스치는 순간,

나는 스님의 걸음에서

땅 위의 어느 미물도 해치지 않으려는 자비를 보았다.

그 발걸음 하나가 이미 수행이었고, 깨달음이었다.


곧이어 종루에서 불전사물의 울림이 시작되었다.

법고가 울리고, 목어가 울리고, 운판과 범종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울리고 있다’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소리였다.

우주가 아득히 떨리는 듯한 울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닿는 듯한 파동이었다.


취재팀 모두는

그 소리 앞에서 말없이 멈추었다.

세상의 소음이 잠잠해지고

내면이 확 트이는 순간이란

이런 것일까 싶었다.



마지막 일정이 시작되자

나는 잠시 경내를 벗어나

법주사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당신은 행복한가‘


달라이 라마와 정신과 의사 하워드 커틀러가

10년 동안 나눈 ‘행복에 대한 토론’을 담은 책.

455쪽의 두꺼운 책을 들고

나는 큰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그 책은 오래전 내 어린 시절과 연결되어 있었다.


중학교 졸업 후 공장에 다니며 월급을 받으면

책을 사기 위해 일부를 떼어두던 그 시절.

고단한 삶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

나는 실존철학과 인문학을 붙잡았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실존’이 뭔지도 모르던 나이였지만

책을 통해 삶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던 그 시절이

오래된, 그러나 분명한 기억으로 돌아왔다.



책을 넘기다 한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문제 많은 세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가?”


두 거장은 세상의 문제점을 논하며 답을 찾았지만

나는 내 삶을 떠올렸다.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취재하며

그들의 눈물과 분노, 절망과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내던 시절.


프로그램이 끝나면 또 다음 주 방송이 기다리고,

몰래카메라 설치, 취재, 편집, 원고, 자막…

숨 돌릴 틈 없이 달려야 했다.

스트레스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 감독, 작가, 조명, 그래픽 요원

모두가 같은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고단함을 떠올리며

나는 내 안의 질문에 답을 찾으려 했다.


“행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책은 단순하게, 그러나 가장 깊게 말했다.


“내가 행복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순간 나는

오늘 새벽 스님의 발걸음과 사물의 울림,

그리고 취재팀의 맑은 표정이

그 답을 설명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교의식과 명상, 참선에 참여한 스탭들의 얼굴은

내가 TV에서 보던 그들이 아니었다.

고요했고, 편안했고, 서늘한 마음의 돌기가

부드럽게 깎여나간 얼굴이었다.


행복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무언가임을

그 순간 알 것 같았다.


책을 다 읽은 것은 저녁 7시,

하루를 그대로 앉아 읽어내린 시간이었다.

취재팀이 공양간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그 책의 마지막 문장을 대신해주었다.


행복은 나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피어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책은 내 서재의 한칸에 꽂혀 있다.

삶이 어지러울 때,

마음이 고통 속에 흔들릴 때,

나는 조용히 그 책을 펼친다.


그날 법주사 새벽 종소리를 기억하며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그리고 다시 되새긴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한 번 더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


그날 레나강 위에서 들었던 아베마리아처럼,

법주사 새벽 공기 속에 울리던 범종처럼,

행복은

아주 작고 고요한 울림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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