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사라지는 소리는 눈이 내릴 때 가장 잘 들린다
12월, 낙엽이 모두 떨어지고 숲이 비워지면
인간의 그림자는 깊어지고, 동물의 그림자는 얇아진다.
나는 10년 넘게 그 겨울 숲에서
생명을 사냥하는 자들을 쫓았다.
그중 한 명은 제보자의 말처럼 정확히 톨게이트를 빠져나왔고,
트렁크가 열리는 순간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겨울잠도 제대로 들지 못한 황구렁이였다.
12월, 숲은 모든 소리를 지운다.
바람도 느리고, 발자국도 드물고,
야생동물들은 나무 뒤, 뿌리 아래, 혹은 산비탈의 틈에 숨는다.
그때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다.
밀렵꾼이다.
숲이 우거지면 동물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밀렵은 언제나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가장 활발했다.
나는 10년 넘게 그 현장을 취재했다.
강원도, 충북, 충남, 지리산…
전국의 겨울산을 쫓아다니며
젊은 30대부터 인생 풍파를 다 겪은 70대까지
수많은 밀렵꾼을 만났다.
그들이 잡는 동물도 다양했다.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오소리, 산양, 박쥐, 담비, 뱀…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잡았다.
한때 오소리가 몸에 좋다는 소문이 돌자,
중국 대련에서 오소리를 ‘컨테이너 단위’로 밀수해 온 일도 있었다.
생명의 가치를 떨어뜨린 건
야만이 아니라
‘몸에 좋다’는 소문이었다.
한겨울이었다.
충북 제천에서 익명의 제보 전화가 왔다.
“0월 0일 아침 10시.
원주 인터체인지로 빠져나오는 승용차가 있습니다.
차 번호는…, 운전자는 …입니다.”
너무 구체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이름이라도 말씀해주셔야 믿을 수 있습니다.”
“저는 밝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믿으십시오.
이 사람은 전국을 돌며 ‘구렁이만’ 잡습니다.
이제 한국에는 구렁이가 거의 없습니다.
반드시 취재해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정확한 제보입니다. 믿으세요.”
그 말의 무게가 이상했다.
나는 촬영팀과 야생동물 단속반을 데리고 현장으로 갔다.
카메라 2대와 6mm 카메라 1대를 톨게이트 인근에 설치했다.
제보자가 말한 오전 10시가 다가왔다.
눈은 톨게이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가 나타났다.
나는 단속반에 말했다.
“저겁니다. 바로 저 차입니다.”
제복을 입은 단속반이 차량을 세웠다.
“선생님, 차량에 밀렵된 뱀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확인만 하겠습니다. 트렁크 열어주시죠.”
남자는 강하게 부정했다.
“무슨 뱀입니까. 저는 그냥 업무차 이동 중입니다.”
나는 부드럽지만 뚝심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없으시다면 더 쉽게 확인될 일입니다.
트렁크만 열어주시면 됩니다.”
그는 30분 동안 버텼다.
그러다 내가 경찰 입회를 요청하겠다고 하자
그제야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더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고엽제 환자입니다.
뱀이 몸에 좋다고 해서… 산 것이지… 밀렵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오랫동안 수많은 현장을 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눈빛.
트렁크가 열렸다.
그 안에는
황구렁이, 살모사, 독사, 유혈목, 밀뱀…
겨울잠도 들지 못한 채
얼어붙은 몸으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제보자는 정확했다.
그 뒤로도 나는 많은 밀렵꾼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
무너진 집안,
가난,
상실감.
그들은 말했다.
“살려면 이거라도 해야죠…”
혹은
“나도 내가 싫어요.”
어떤 이는
새벽에 올무를 확인하러 갔다가
맷돼지에게 들이받혀
두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그게 제 죄값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생명을 괜히 건드린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산에서 버섯만 딸 겁니다.”
이제 또 겨울이다.
확실히 과거보다 밀렵은 줄었다.
법도 강해졌고, 관리도 촘촘해졌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직도 어둠 속에서 누군가는 사냥을 하고 있다.
사람만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이
이 겨울에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매해 겨울이 오면
그 황구렁이의 싸늘한 몸과
트렁크 앞에서 떨리던 한 남자의 손,
그리고 이름도 밝히지 못한 제보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떠오른다.
생명은 겨울에도 울고 있었다.
우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