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춤을

춤이 멈춘 자리에서 배운 사랑

by 최국만


아내는 노인복지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곧바로 노인복지기관으로 갔다.

마흔을 앞 둔 나이였고,

일은 늘 성실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진심이었다.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아내의 일이었다.

건강, 배움, 관계.

그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스포츠댄스였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그 시간 동안 노인들은 웃었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풀렸다.

아내는 말했다.

“사람은 움직여야 살아 있는 것 같아 보여.”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물었다.

“우리도 같이 배워볼까?”


그때 나는 시사프로그램 한가운데 있었다.

취재, 편집, 생방송.

밤을 새우는 날이 더 많았고

얼굴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다 알 텐데…”

내가 망설이자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알면 어때.

당신도 그냥 사람으로 보이면 되지.”


충북대 평생교육원.

스무 명 남짓한 교실.

처음엔 아무도 나를 몰랐다.

그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지르박을 배우던 어느 날,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최PD님 아니세요?”


그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말했다.

“여보, 나 그만둘래.”


아내는 잠시 나를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너무 오래

자기 자신을 숨기고 살아왔어.”


그렇게 첫 번째 춤은 끝났다.


세월이 흘러 귀촌을 했다.

시간이 느려졌고

부부의 하루도 느려졌다.


어느 날 아내가 다시 말했다.

“나 여성회관으로 스포츠댄스 배우러 가.”

혼자였다.

일주일에 두 번.

집에 돌아오는 얼굴이 밝았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왜 나는 늘 뒤에 있었을까.

왜 함께 손을 내밀지 못했을까.


그래서 말했다.

“나도 같이 갈게.”


이번에는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사람들이 알아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지르박, 차차차.

서툴렀지만 웃음이 났다.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고

그 밝음이 나에게도 옮겨왔다.


그제야 알았다.

춤은 기술이 아니라

속도를 맞추는 일이라는 걸.

앞서가지 않고

놓지 않는 일이라는 걸.


지금 아내는 암 투병 중이다.

춤은 잠시 멈췄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다시 그날이 올 거라고.

아내의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인생을 다시 한 바퀴 도는 날이.


아내와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잘 추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서 있겠다는 약속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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