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도 될 것과 놓아야 할 것 사이에서
현직에 있을 때 나는 많은 기관과 단체에 속해 있었다.
스스로 선택한 곳도 있었지만,
방송국 국장이라는 직함으로
자천타천 들어간 자리도 적지 않았다.
사회복지신문, 야생동물보호협회, 치매 관련 단체, 환경단체, 적십자,
이름만 들어도 그럴듯한 곳들이었다.
어떤 곳은 1년에 한 번 회의가 전부였고,
어떤 곳은 아예 이름만 올려두는 자리였다.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진행하면서
얼굴이 알려졌고,
그 얼굴 하나로 단체의 위신이 선다고 여긴 곳도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사람으로 초대받기보다
직함으로 불린 경우가 많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체의 설립 이념에 맞게
묵묵히 활동하는 곳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퇴직과 함께
나는 모든 직함을 정리했다.
현직의 이름으로 받은 자리라면
그 직함이 사라질 때
함께 내려놓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은퇴 이후
가끔 먼저 퇴직한 지인들을 만난다.
아직도 현직 시절의 향수에 머무는 사람,
불안해서인지
다시 단체와 기관에 속하려 애쓰는 사람도 있다.
속하는 것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봉사단체도 좋고, 자선단체도 좋다.
문제는 그곳에서도
다시 ‘자리’를 원하고
예전의 대접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예순이 넘으면
인생의 희노애락을 웬만큼 다 겪은 나이다.
조직의 장도 해봤고,
사람을 이끌어본 경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앞에 서기보다
한 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도
나는 한두 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가,
아니면 아직도 습관처럼 붙들고 있는 것인가.
산림기술인회 이사직은
추천을 받아 맡게 된 자리다.
산림 전공자는 아니지만,
현직에 있을 때 숱한 산림 관련 현장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산림의 현실과
미래의 방향에 대해
몸으로 배운 것이 있었다.
분기에 한 번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예산과 정책, 산림의 미래를 두고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그 자리에서만큼은
내 경험이 쓸모가 있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아직은
그 직함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은퇴자의 삶에 대해 생각할수록
점점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은퇴란
무언가를 더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걸러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현직에 있을 때의 나는
늘 바빴다.
다음 방송, 다음 취재, 다음 일정.
삶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고뇌도, 통찰도
대부분 뒤로 밀려 있었다.
은퇴 이후에야
비로소 지금의 삶을 돌아본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속도로 걸어가야 할지.
이 사유의 시간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값진 시간이다.
그래서 점점
나를 불필요하게 구속하는 것들에 대해
정리하고 싶어진다.
직함이 아니라
관계, 기대, 책임이라는 이름의 무게들 말이다.
삶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언젠가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면
조금 더 이른 지금이
나 자신에게 더 정직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무엇을 더 맡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더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은퇴란 끝이 아니라
비워낼 수 있게 된 시간.
그 여백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