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사라진 사람

공동체는 어디에서부터 무너지는가

by 최국만


작년까지 봄이면 꼭 마주치던 사람이 있었다.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이어서 둑길을 걷던 아흔 살의 할아버지였다.

걷는 방향은 달랐지만 시간은 늘 같았다. 오후 네 시.


할아버지는 나무 지팡이 하나만 들고 오직 앞만 보며 걸었다.

키는 140센티미터 남짓,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몸이었다.

마주칠 때면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버님, 힘드시지 않으세요?”

“힘들기는. 아직 걸을 수 있지요.”


언제나 같은 대답, 같은 걸음, 같은 시간.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든든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둑길로 가기 위해 지나던 할아버지 집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로는, 작년부터 치매가 와서 인천에 있는 딸네 집에서 치료를 받고 계신다고 했다.


이제 그 집은 텅 비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세 표정이 사라진다.

집이 아니라, 기억만 남는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을 스피커에서 익숙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 동네에 김 00씨가 운명하셨습니다.”


은퇴 후 시골에 살다 보니, 이 방송은 낯설지 않다.

괴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촌이 그렇겠지만,

이곳에는 신생아 소식보다 부고 소식이 훨씬 잦다.


걷다 보면 빈집과 폐가가 흔하게 눈에 띈다.

정겹고 아름답던 농촌 마을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누군가 돌아가시면

마을 방송으로 소식을 전하고, 이웃들이 함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그 작은 정이 아직은 남아 있다.


도시는 어떤가.

아파트에 살아도 같은 동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누가 떠났는지도 알 수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관심은 점점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도시의 공동체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다.


그래도 농촌에는 아직 아이들이 삶의 희로애락을 본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집에서는

사랑을 받고, 이별을 경험하고, 삶의 끝까지 함께한다.


하지만 도시의 장례는 다르다.

부모는 장례식장에 가고, 아이들은 학원에 간다.

이제는 그것이 문화가 되었다.


우리 마을에는 14가구가 산다.

내 나이는 67세, 그 아래로 66세 한 분이 있고

대부분은 70대 후반에서 90대 초반의 어르신들이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이 마을은 머지않아 또 하나의 빈 마을이 될지도 모른다.


은퇴 이후,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다.

마을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부고 소식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도시에서 시작된 공동체의 붕괴는

이제 마지막 남은 농촌까지 따라오고 있다.


나는 오늘도 오후 네 시에 걷는다.

이제는 마주칠 사람이 없다.


공동체는 제도가 아니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집이 남아 있고,

집이 사라진 자리에 침묵이 남을 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은퇴한 한 사람으로,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으로,

나는 오늘도 그 질문을 안고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