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보다 관계를 선택한 이후의 변화
요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예전처럼 자주 묻지 않는다.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야 괜찮은 사람인지,
그 질문들은 한동안
내 삶을 앞으로 밀어붙이는 힘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질문이 남아 있다.
나는 누구와 함께 이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돌아보면
나는 꽤 오래 혼자 버티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눌렀고,
어른이라는 이유로 마음을 정리해 보였다.
그게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는
나보다 먼저 내려놓는 법을 배운 사람이 있다.
아내다.
아내는 아픔 앞에서도
삶을 증명하려 들지 않았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을 살아냈고,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했고,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었다.
나는 그 곁에서
삶이 꼭 단단해야만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배웠다.
때로는 부드러움이
사람을 더 오래 살게 한다는 것도.
가족은
그 부드러움을 매일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존재였다.
아이들은 거창한 위로 대신
평범한 안부를 건넸고,
그 안부가 하루를 다시 시작하게 했다.
우리는 위기의 시간 속에서
더 많은 말을 나눴고,
더 자주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중심도 조금씩 옮겨졌다.
예전에는
내가 얼마나 버텼는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함께 있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아내는 자주 나눈다.
시간을, 마음을, 손으로 만든 것들을.
특별한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
“나눌 수 있으면 나누는 거지.”
그 말은
내 삶의 방향을 조용히 바꾸어 놓았다.
나눔은 여유가 생긴 다음에 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견디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이웃에게 건넨 작은 물건 하나,
무심히 건넨 안부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건
아내가 몸으로 보여준 삶의 언어였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삶을 해결하려 들기보다
삶을 기록하려는 쪽에 가깝다.
완벽한 답을 찾기보다
지나온 시간을 함부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의 삶에서
나는 더 빨리 가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다.
더 많은 것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사랑을 놓치지 않고,
함께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며,
받은 마음을 다시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앞으로의 삶은
더 빛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더 진실해질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제
혼자 버티는 삶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삶을 선택하려 한다.
아내와, 가족과,
그리고 이웃과 나누며.
그 방향이면
나는 충분히 잘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