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5년 전, 우리는 ‘사회 동창생‘이 되었다

37명의 인생이 바다 위에서 나눈 질문들

by 최국만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배 위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하루였다.


평균 20노트, 시속 37km.

느릿한 물살을 가르는 배 안에는 37명의 인생이 일렁이고 있었다.

3등 객실에는 일찌감치 눅눅한 바다 냄새가 차올랐다.


40대부터 70대까지 나이의 스펙트럼은 넓었지만,

우리는 금세 '동질감'이라는 느슨한 그물에 함께 갇혔다.


대다수는 나와 같았다.

퇴직을 코앞에 두었거나, 이미 도시의 직함을 내려놓고

흙의 정직함에 적응해 가는 귀촌인들.


누군가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도

우리는 첫 입학을 한 여고생처럼 무방비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야, 이 배 왜 이렇게 흔들리냐?”

“러시아 사람들은 영어 좀 하려나?”


질문은 가벼웠고 답은 명쾌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웃음은 경계선 없는 평화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유기농업과 6차 산업' 과정을 함께 배운 사이다.

강의실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낯설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 저녁, 날 선 시선으로 세상을 비추던 시사 프로그램 MC.

그것이 당시 나의 얼굴이었고 그들도 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의가 끝나고 자리를 옮기면 긴장은 사라졌다.


'은퇴 이후'라는 공동의 숙제만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도시에 살다 내려왔더니 생각보다 농사가 고되네요.”

“여기 오니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고백을 들으며 나 역시 '은퇴 이후의 나'를 선명하게 그려보았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찾아올 공허함과 무료함.

겉모습은 달라도 우리가 품은 두려움의 본질은 같았다.

어느 날 수업 끝에 터져 나온 해외연수 제안은,


어쩌면 혼자서는 넘기 힘든 인생의 문턱을

함께 넘어보자는 무언의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전 8시, 블라디보스토크항에 닻을 내렸다.


태평양을 향한 러시아의 관문이자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

거창한 역사적 위용보다

3등 객실의 웃음소리가 더 활기차게 선내를 울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인간은 본래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닐 텐데.

우리는 왜 먹고사는 문제에 갇혀 희로애락의 노예로 살아야 했을까.


이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직함'으로 서로를 규정하지 않았다.

학교 동창처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음식을 나누는 '사회적 동창생'일 뿐이다.

주름살 하나하나가 삶의 깊이를 증명하는 훈장처럼 보였다.


발해의 영토였던 우수리스크의 흙길을 걸었다.


이상설 열사의 유허비 앞에서 느꼈던 뜨거움과 기차의 덜컹거림.

그 역사적 궤적 위로 37명의 삶이 겹쳐졌다.


4박 6일의 여정.

그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퇴직 앞의 불안과 귀촌의 희망을 함께 걷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퇴직 5년 전에 맺은 인연은 여전히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농촌의 투박한 이야기와 도시를 떠나온 이들의 속살 같은 고백들.


그날 마지막 바다 위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만남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연장선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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