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었을까

그 순간, 내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by 최국만


시사프로그램을 만들며 살았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렇게 민감한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한 번도 뇌물이나 접대를 받지 않을 수 있었나요?”


솔직히 말하면,

유혹은 없지 않았다.

아니, 많았다.


돈이 오갔고,

밥자리가 있었고,

말 한마디만 바꾸면 편해질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다.

침묵하면 넘어갈 수 있었고,

조금만 눈을 감으면 모두가 좋아하는 결말이 나오는 상황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많은 유혹 앞에서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을까.

나는 특별히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도덕적으로 특별히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청빈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고,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 역시 사람이고,

편해지고 싶었고,

안전하고 싶었고,

때로는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선 앞에 서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혹보다 먼저 떠오른 얼굴

뇌물이나 접대의 순간마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법도, 규정도, 회사의 윤리 강령도 아니었다.


내 얼굴이었다.


그 돈을 받은 뒤

편집실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던지는 나의 목소리,

후배들의 눈을 마주치는 나의 표정이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산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건 실패보다 두려웠다.


진실을 다루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다룬다

시사프로그램은

세상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검증하는 일이다.


“이 질문을 할 자격이 있는가”

“이 비판을 할 수 있는 위치인가”


그 자격은

권력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나는 그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다.


그는 도망칠 수 있었지만 독배를 마셨다.

많은 사람들은 그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나 자신과 모순된 삶을 살 수 없다.”


그 말이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도 그대로 들어왔다.

나는 영웅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위대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각오한 적도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유혹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로 살 수 없다는 것.


성공해도 실패한 삶,

살아 있어도 무너진 정체성.

그걸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질문을 한다


나는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었을까.

아마도 답은 이것일 것이다.


나는

세상을 속이는 것보다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 더 무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철학이든,

직업윤리든,

그저 성격이든

이제는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 선택 덕분에

나는 지금도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부끄럽지 않게 다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면

내 인생에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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