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의 윤리

밀렵의 계절에서 배운 PD의 자격

by 최국만


11월 초였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이 계절이 오면, 산에는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된다.

밀렵꾼들의 계절이다.


전국의 뱀이 나올 법한 곳마다 올무와 덫이 놓인다.

뱀의 귀소본능을 노린 뱀그물은

동면을 위해 올라가는 산길목을 막아선다.

보이지 않는 그물은 늘 먼저 생명을 붙잡는다.


나는 오래전 밀렵꾼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충주호 안에 있는 작은 섬들, 거기엔 매년 뱀그물이 깔려요.”


충주호 일대 관할은 제천시였다.

나는 담당 부서로 전화를 걸었다.


“충주호 내 섬에 밀렵이 반복된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취재를 나갈 예정인데,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11월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는

전국이 밀렵 집중 단속 기간이다.

답은 곧바로 왔다.


“행정선으로 가시죠.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그날 현장에는

제천시 공무원 6명 ,우리 취재팀 4명.

총10명이 함께 배를 탔다.


십수 년 동안 전국을, 해외까지 다니며 밀렵을 취재했지만

충주호 안의 섬을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작은 섬이라 불렸지만

실제로는 넓었다.

가을 초입의 숲은 아직 울창했고

밀렵의 흔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보통 뱀그물은

산 아래부터 길게 설치된다.

수백 미터, 때로는 몇 킬로미터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계곡에서 산 중턱까지

세 조로 나뉘어 올라갔다.

그러나 새로 설치된 그물은 없었다.

과거에 쓰다 남겨진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그물 옆 통발 속에는

빠져나가지 못한 양서류와

작은 살모사 몇 마리가 갇혀 있었다.

우리는 통발을 털어 그들을 놓아주었다.


그날, 새 밀렵의 흔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취재를 마치니 정오를 훌쩍 넘겼다.


“최 PD님, 점심 드시죠.”


충주호 주변 식당들은 대부분

민물고기 회나 매운탕집이었다.

우리 팀 하루 취재 진행비는 3만 원.

네 사람이 백반 한 끼를 먹는 정도의 금액이다.


그날은

취재팀 4명, 공무원 6명.

열 명이었다.


“오늘은 저희가 대접하겠습니다.

지역까지 와서 고생하셨잖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시잖아요.

저, 공무원한테 밥 안 얻어먹는 거.”


서로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갔다.

그러다 한 공무원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오늘은

제가 공직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방송국 PD에게 밥 한 끼 얻어먹는 날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모두 웃었다.


메뉴판을 펼쳤다.

잡어매운탕 대(大) 5만 원.

두 냄비에 공기밥까지 해서

총 11만 원.


충주호 바람을 맞으며

그날의 취재 이야기를 나눴다.

밀렵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겨울 현장에서의 고단함 같은 것들.


계산은 내가 했다.

진행비 3만 원에

내 돈 8만 원을 더 보탰다.


“최 PD님, 오늘 정말 잘 먹었습니다.”


나는 시사프로그램을 만들며

한 가지 원칙을 지켜왔다.


취재 대상자로부터

밥 한 공기도 얻어먹지 않는다.


취재의 편의는

곧 취재의 균열이 된다고 믿었다.

도덕과 윤리를 무너뜨린 방송은

결국 시청자에게 부끄러운 결과로 돌아온다.


이 기준은

나 혼자만의 원칙이 아니었다.

우리 제작팀 모두에게

늘 강조해온 철칙이었다.


“방송 PD에게 처음으로 밥을 얻어먹었다”는

그 공무원의 말은

오히려 나에게 많은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흔히

기자와 언론인을

‘무관의 제왕’이라 부른다.


과연,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나는 늘 그 질문을 품고

취재 현장에 섰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를 지켜주었다.


11월, 밀렵의 계절.

그날 내가 기록한 것은

뱀그물이 아니라

밥 한 끼에 담긴

언론의 윤리였다.


매거진의 이전글새벽 2시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