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소년의 아픔을 품고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 뛰었다
새벽 2시.
밤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겨울이라 바람은 더 날카롭고, 어둠은 묵직하다.
보통 새벽 취재는 전날 현지에서 숙박을 한다.
하지만 청주에서 옥천까지는 한 시간 반 남짓.
그날은 그냥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에는 화물차들만 간간이 보였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겨울 풍경
산 위에 남아 있는 눈,
앙상한 가지에 부딪혀 울리는 바람 소리.
마치 오늘 내가 보게 될 장면들을
미리 예고하는 영상 같았다.
취재의 이유는 단순했다.
옥천군에서 위탁받아 청소를 담당하던 업체가 바뀌면서,
기존 환경미화원들을 고용 승계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제보.
이런 일은 낯설지 않았다.
전국의 많은 지자체에서 반복되던 구조적 문제였다.
입찰은 새로 하지만,
사람은 새로 쓰지 않아도 된다는 허술한 제도.
그 틈에서 가장 먼저 잘려 나가는 건
언제나 가장 성실했던 사람들이었다.
청소업체 사무실은 군청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다.
정식 건물도 아닌 컨테이너.
하지만 안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쓰레기 수거 차량 두 대에는 이미 시동이 걸려 있었다.
“아이고, 이렇게 추운데 뭐 하러 벌써 오셨어요.
우리 일 끝나고 오전 11시쯤 오셔도 되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네요, 최 PD님.
옷은 단단히 입으셨어요?”
나는 두꺼운 파카에 털모자, 귀마개, 두꺼운 장갑까지 꼈다.
이 정도를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날씨였다.
“우리는 새벽 3시엔 꼭 나옵니다.
빠르면 3시 반, 늦어도 4시면 수거 시작해요.”
하루 중 가장 추운 시간.
이들은 그때부터 온 동네 골목을 돈다.
아침 출근길,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그 ‘깨끗함’은
이 새벽의 노동 위에 놓여 있었다.
쓰레기 수거 차량 한 대에
운전기사 한 명,
뒤 발판에는 세 명.
차가 멈추면 동시에 뛰어내린다.
쓰레기를 들어 올려 던지고,
다시 차에 매달린다.
도착부터 출발까지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 속도로 하루를 수십 번 반복한다.
카메라는 무거웠다.
그때는 10kg이 훌쩍 넘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이렇게 해야 아침이 늦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세요?”
“각자 맡은 구역이 있습니다.
이렇게 안 하면 출근 시간 전에 끝낼 수가 없어요.
구역이 넓거든요.”
그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자기 일에 대한 설명이었고,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었다.
이분들은 성실함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매일 누리는 단정한 아침은
그들의 새벽 덕분이었다.
지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번에 업체가 바뀌는데요,
새 업체에서 우리 전원 고용 승계를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분도 말을 이었다.
“배운 것 없고,
그래도 이 일 하면서 고정 월급 받으니까
조금은 숨 돌리며 살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내 나이도 곧 예순입니다.
아직 공부하는 애도 있어요.”
여섯 명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어린 시절,
여름에 얼음 배달을 하다
부산 금정산 휴게소에서 쉬었다.
너무 덥고 힘들었다.
도착했을 때 얼음은 반쯤 녹아 있었다.
주인은 받지 않았다.
다시 들고 돌아오는 사이
얼음은 더 녹았다.
사정을 설명했을 때 돌아온 말들
그건 꾸중이 아니라
사람을 지워버리는 말들이었다.
그날 나는 해고됐다.
그 뒤로도 수십 개의 공장을 전전하며
어린 나이에 겪었던
‘가진 자들의 무심함’은
내 삶 깊숙이 남아 있었다.
지금 이 환경미화원들의 상황은
그때의 나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본질은 닮아 있었다.
나는 왜 이들을 고용 승계해야 하는지,
해고가 한 가정과 지역 사회에 어떤 파문을 남기는지
현장에서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업체 변경 후에도
기존 인력을 모두 승계한 사례들을 함께 담았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손길이
쓰레기처럼 버려져도 되는지,
그 질문을 시청자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나는 제작자이자 진행자로서
새벽 3시부터 세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방송은 편집 없이,
그대로 나갔다.
이미 프로그램은
‘약자의 편에 서는 방송’으로
시청자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새로 업체를 인수할 대표도 인터뷰했다.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당시의 클로징 멘트다.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
남이 버린 쓰레기를 묵묵히 치우는 사람들.
이들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시사플러스, 이번 주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도 새벽 거리를 쓸고 있을
그분들께 이 글이 닿기를 바랍니다.
또,
이 사회를 묵묵히 떠받치며 살아가는
수십만의 노동자들에게도.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누군가의 새벽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오늘만큼은
잠시라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기억 하나면,
이 글은 제 역할을 다한 셈입니다.
방송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최 PD님, 우리 전원 고용 승계하기로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새벽의 한기를 털어낼 수 있었다
옥천의 그 새벽,
우리가 함께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음을 세상이 대답해 준 것이었다.
언론인으로 살며 가장 보람된 순간은 상을 받을 때가 아니라,
이렇게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냈다는 소식을 들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