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을 버리고 얻은 단 하나의 이름

“ 비운 서재에 아내의 세월이 앉았다“

by 최국만


이사할 때마다 트럭 한 칸을 당당히 차지하던 것들이 있었다.

크리스탈, 목각, 유선형의 유리 조각들.

30년 넘는 프로듀서의 삶이 남긴 훈장들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도지사, 시장, 환경대상,녹색언론인상…

내 서재의 자부심이자 치열했던 현장의 훈장이었다.


시골로 내려오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날이었다.

아내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여보, 이 상들 다 버리면 안 될까? 특히 깨지기 쉬운 것들 말이야.”


처음엔 서운했다.

남들은 평생 하나 받기도 힘든 상이다.

그걸 버리라니.

하지만 아내의 이어진 말 앞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내에게 그 상패들은 ‘나의 영광’이 아니었다.

내가 전국과 해외를 누비며 집을 비웠던 ‘부재의 영수증’이었다.

내가 카메라 뒤에서 밀렵꾼을 쫓고 쓰레기 시멘트의 진실을 파헤치는 동안,

아내는 혼자였다.


아이 셋을 데리고 바다로, 산으로 떠났다.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려 메뚜기를 잡고 수학여행 짐을 챙겼다.

가문의 대소사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아내는 내게 “밖의 일에만 전념하라”며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수십 개의 상패는 내 능력이 아니었다.

아내의 무한한 헌신을 먹고 피어난 ‘슬픈 꽃’이었다.


시장으로 달려가 커다란 쓰레기 포대 두 개를 사 왔다.

“그래, 이건 밀렵 취재 때 받은 거지. 이건 환경스페셜 때 받은 거고...”

포대 속으로 크리스탈 조각들이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하나씩 던져 넣을 때마다 아내의 고단한 얼굴이 떠올랐다.

상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미안함은 깊어졌다.

화려한 수식어를 버리고 나서야 아내의 세월이 똑바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손에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노무현 대통령 표창’.

반부패 방지에 혁혁한 노력을 한 이에게 주는 청백리 표창이다.


정부는 이 상을 주기 위해 한 달간 나를 정밀 조사했다.

부패한 언론인은 아닌지, 뒷돈을 받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조사관들이 직접 지역까지 내려와 확인 절차를 거쳤다.


이 상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나의 청렴함을 증명해서가 아니다.

남편이 밖에서 올곧게 취재에만 전념하도록 안에서

가정을 지켜낸 아내의 노동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내 30년 PD 생활의 결론이자, 아내의 헌신에 국가가 보낸 답장이었다.


이제 내 서재 선반은 비어 있다.

수십 개의 상패가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아내의 이름이 앉았다.

나는 이제 상패를 닦는 대신 아내의 거친 손을 잡는다.


세상이 주는 상은 포대에 담겨 버려졌지만,

내 곁을 지켜준 아내라는 가장 귀한 훈장은 이제야 내 가슴에 오롯이 걸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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