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인연
“형님, 저 건태예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여름처럼 밝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어, 건태야. 별일 없지?”
잠깐의 침묵 뒤에
그가 말했다.
“도명산에서 탐방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가지고 내려오다가
굴러서 다리가 부러졌어요.”
건태는
여름이면 국립공원에서
탐방객 관리, 순찰, 안전까지
혼자서 네 사람 몫을 하던 직원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폭염 속에서
혼자 쓰레기를 수거하다가
산에서 굴렀다.
그런데 공단에서는
산재 처리가 바로 되지 않았다.
“형님, 좀 알아봐 주세요.”
나는 취재를 하듯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다.
“형님, 산재 처리돼서
수술했어요.”
그제야 숨이 내려앉았다.
수술을 마치고
완전히 회복도 되기 전에
건태는 홍도로 전출을 갔다.
“순환근무예요.
어차피 연고지를 한 번 떠나야 해서요.”
그는 담담했다.
혼자였다.
가족은 남겨두고 왔다.
우리는 여름휴가를 겸해
홍도로 갔다.
사실은 휴가라기보다
그의 얼굴이 궁금했다.
홍도에 도착하자
건태가 달려왔다.
취재 PD와 공단 직원이 아니라
형과 동생처럼 웃었다.
등대 불빛이 켜지고
바닷바람이 불었다.
“다리는 좀 어때?”
“처음 수술이 잘 안 돼서
오른쪽 다리가 1센티 짧대요.”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직장 때문에 이 섬에 와 있고
가족 걱정과 앞날에 대한 불안이
얼마나 무거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한 푼도 쓰지 못하게 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돌아오는 날,
건태가 말했다.
“형님, 섭섭해요.
아무것도 못하게 하시고…”
그리고
미역 한 봉지를 내밀었다.
“홍도 자연산이에요.
이것만은 받아주세요.”
배가 떠났다.
선착장에서
그가 손을 흔들었다.
“그래, 건태야.
건강한 모습 보니까 좋다.
꼭 다시 보자.”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느 날,
카톡 메시지가 왔다.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 김건태가 병세 악화로
사망했습니다.
수첩에서 명함을 발견해
늦게 연락드립니다.”
눈앞이 멍해졌다.
왜 지금이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나중에 알았다.
다리 재수술 중
마취 문제가 있었다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오래 남는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지방자치단체를 취재했다.
박봉에도
묵묵히 일하던 공직자들을
많이 만났다.
건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 더운 여름,
혼자 산을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치우던 사람.
진실했고
성실했고
말이 적었다.
날씨가 스산한 오늘,
뚝방길을 걷다가
문득 건태 생각이 났다.
홍도 선착장에서
손을 흔들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그를
도와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받았다.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눈가가
조용히 젖었다.
어떤 이름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겨울이면 더욱 마음을 파고드는 이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