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은 실패했지만 , 팀은 무너지지 않았다
시사 PD의 몸은 계절을 정면으로 맞는다. 여름엔 숨이 막히고, 겨울엔 손끝이 죽는다.
스튜디오에서는 계절이 ‘온도’지만, 현장에서는 계절이 ‘적’이다.
이미 5월인데 여름이 시작되었다.
연일 낮 최고기온이 25도를 넘었다.
나는 그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현장 PD는 날씨랑 싸우는 직업이구나.”
그날 제보는 후배에게서 왔다.
“선배님, 저한테 제보가 왔는데요. 00 지역 내 생수업체에서 해외 유명 생수 상표를 붙여 국내 시장에 유통시킨다고… 취재를 부탁하는데요.”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서 생수는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웰빙이 붐이었고, “물도 몸에 좋은 걸 골라 마신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진입장벽은 낮고, 경쟁은 뜨겁고, 시장은 빠르게 과열됐다. 실제로 국내 생수 시장은 업체 수가 많고 경쟁이 치열한 구조로 분석된다.
그 틈을 타 불법과 편법도 늘었다. 2006년에는 오염된 지하수를 생수로 판매한 업자 등이 무더기로 적발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하수’가 돈이 되기 시작하자, 지역에서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지하수 고갈을 걱정하며 생수 공장 건립을 반대하는 기사도 그 시절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나 역시 생수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니까 그때 생수는, 한 병짜리 물이 아니라 돈과 욕망과 지역 갈등이 섞인 산업이었다.
제보 내용을 들으며 나는 후배를 잠깐 봤다.
후배는 늘 그렇듯 눈이 빠르다.
“선배, 이거 한 번만 잡으면 그림 나옵니다.”
그 표정이 너무 ‘프로’라서, 나는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졌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대형 화물차가 새벽 2시예요 , 해외 유명 상표 붙인 생수를 싣고 나간대요. 제보자는 공장 1킬로미터쯤 떨어진 데서 식당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결심했다.
제보는 접수하는 순간부터 ‘현장 노동’이 된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제보는 공짜가 아니다.
잠복은 밤을 바꾸고, 촬영은 위험을 바꾸고, 방송은 책임을 바꾼다.
나는 직접 제보자를 만나기로 했다.
후배와 함께, KBS 로고 없는 차를 골랐다.
취재는 늘 누군가에게 들키는 순간 ‘정보전’이 된다.
공장을 먼저 사전 답사했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였고, 시설은 생각보다 크고 자동화돼 있었다.
“이 정도면… 작은 업체가 아니다.”
나는 그때부터 ‘그림’보다 ‘가능성’이 먼저 보였다.
큰 업체일수록, 들키면 더 빨리 정리한다.
5월인데 나무가 벌써 우거졌다.
잠복할 산을 직접 올라가 공장 쪽을 내려다봤다.
잠복하는 산에서 공장까지는 직선거리로 100M 정도였다.
잡목 몇 개만 정리하면 카메라 설치가 가능했다.
그 순간부터 시사 PD의 시간은 ‘정상 시간’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밤 12시에 자고, 시사 PD는 새벽 2시는 한참 일을 할 때다.
사람이 잠들 시간에, 우리는 사람이 숨길 일을 찾는 시간이다.
식당에서 제보자를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장면이 있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이고 , TV에 나오시는 분이네요,우리 매주 봅니다“
“ 네, KBS 최국만 PD 입니다.”
“ 연락 주셨지요”
그런데 아주머니는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모를… 제가 연락해요? 나는 그런 적 없는데요.”
옆에 있던 후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아저씨가 얘기했어요.”
제보자는 잠시 후 들어왔다.
“제가 제보했습니다. 1주일에 두 번은 새벽 2시에 대형 화물차가 생수를 싣고 나가요.”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내일 수요일에 반드시 나갑니다.
매주 수요일,금요일에 싣고 나갑니다.
나는 두 시간 가까이 캐물었다.
왜 제보했는지, 다른 목격자는 있는지, 사진이나 영상은 있는지.
우리는 일반적으로 제보자를 만난 시점부터 전체를 녹화를 하고 오디오를 담는다
그런데 그는 녹취 및 비디오 촬영을 완강히 거부했다.
음성 변조를 해도, 식당을 모자이크해도, 직원들이 알아볼 거라는 이유였다.
“사장님, 아주머니는 모르고 있던데요.”
“네. 아내한테도 말 안 했습니다. 직원들이 가끔 이 식당 오거든요. 혹시라도 말이 새면….
우리는 이곳에 못 살아요. 워낙 지역이 좁아서 …“
그 순간 나는 확신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이 사람은 주장은 확실했다.
“ 그분들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잖아요,반드시 방송을 통해 고발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취재라는 건 늘 그렇다.
확실한 제보도, 현장에선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방송은 3주 뒤였다.
우리는 내일부터 잠복에 들어가, 다음 날 새벽 2시에 ‘국내 생수가 외국산 생수로 둔갑해 나가는 현장이 잡아야 한다’
그 화물차가 안 나가면, 취재는 쫓기고 방송은 꼬인다.
시사 PD의 일정표는 종종 “사건이 나와 주길 바라는 마음”과 싸운다.
원래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데, 현실은 그렇게 만든다.
사무실에 시사팀 전체 PD와 작가가 모였다.
나는 말했다.
“내가 직접 제보자를 만났어. 거짓 같지 않아.
근데 내일 새벽에 차가 안 나오면 우린 끝이다.
한 명은 플랜 B를 찾아서 취재해라.”
이게 팀이다.
시사팀은 늘 한쪽 눈으로는 ‘진실’을 보고, 다른 눈으로는 ‘방송’을 본다.
둘 다 놓치면 안 된다.
그날 밤, 최소 인원만 데리고 현장에 들어갔다.
부장에게만 보고했다.
카메라 감독, 운전기사, 그리고 나.
장비는 적외선 카메라와 일반 카메라, 6mm 캠코더 2대가 전부였다.
산속에서 다시 회의를 했다.
“현재시각 오후 8시. 실제 사건은 6시간 뒤인 새벽 2시가 취재 시작이다“
이 말 한 줄이 얼마나 잔인한지 아는 사람은, 같은 일을 해본 시사 PD일 것이다.
6시간은 길다.
게다가 산속의 6시간은 더 길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모기는 폭격처럼 달려들고, 저녁 식사 대용으로 사 온 치킨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시사 PD의 잠복은 고통의 순간들이다.
대부분 추하고, 가렵고, 추우면서도 덥다.
도저히 잠을 참을 수 없으면 웅크리고 새우잠을 잔다.
그것도 잠깐이다.
정신이 흐려지면 끝이라서, 더 억지로 정신을 깨운다.
“아무도 자면 안 돼.
생수차가 안 나오면 방송 펑크야.
정신 바짝 차리고 공장 잘 봐.”
1시.
1시 30분.
공장에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화물차가 들어오는 기척도, 지게차 소리도 없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새벽 2시.
정문은 열리지 않았다.
“ 야, 오늘 수요일 맞지, 왜 안나가지. 방송 펑크다“
그 순간, 나는 ‘사실’보다 먼저 ‘방송 일정을 보았다“
방송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는 공포.
실패가 취재 실패가 아니라, 팀 전체를 흔드는 사고가 될 수 있다는 공포였다.
새벽 4시까지 기다렸다.
새벽 5시, 하늘이 밝아오고 있다.
우리는 이동했다. 일단 차에서 스탭을 잠시라도 눈을 붙이게 했다.
지난 밤 우리는 꼬박 밤을 새웠다.
나는 멍하니 앉아 계산했다.
“이 실패를 어떻게 수습하지.”
그때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피디님, 어제 지시한 각종 자료 다 모아놨어요.
지하수관련 법규, 유사사례, 전국 지하수 문제, 생수 공장 난립 문제점… 다 스크랩했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찔렀다.
후배와 작가들도 밤새 자료를 찾고 밤을 새며 방송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고백하건데 우리 작가들 숱하게 밤을 새웠다.
그들은 내게 “성공했냐”고 묻지 않았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그게 시사팀의 사랑 방식이다.
나는 말했다.
“일단 여긴 실패다. 내가 떠날 때 전화할게.
취재 중인 피디랑 작가, 취재 잠시 접고 다 귀사해서 회의 준비하라고 해라“
“ 최PD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우리 막강 시사팀이잖아요”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정공법으로 들어간다.
시사 PD가 마지막에 선택하는 방법은 대개 이것이다.
“들키더라도, 확인하겠다.”
오전 8시 30분.
공장에 도착하자 2층에서 누군가 내려왔다.
“아이고, 최PD 님. 왜 산속에서 고생해요.
사무실로 올라가서 차나 한잔해요.”
그 생수공장 전무였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우리가 산속에 잠복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취재가 ‘이미 들켰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최 PD님 , 이상한 제보 들으셨지요, 우리 그런 것 안합니다.
아니, 지금이 어드 시대인데 그 짓을 합니까“
“최피디님, 참 고생 많이 하셨네“
나는 일부러 웃으며 둘러댔다.
“우린 오색딱따구리 취재하러 왔어요.”
전무는 내 웃음을 웃음으로 받지 않았다.
“최피디님이나 나나 다 전문가들인데 왜 그러세요.”
결국 나는 취재 내용을 공개했다.
제보가 있었고 잠복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리고 제안했다.
“공장 안을 보게 해 주세요.
생수통, 상표들. 전부요.”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한 시간 공장 안팎을 샅샅이 살펴 보았다.
해외유명 상표를 붙인 생수통은 물론, 그 비슷한 흔적도 없었다.
방송국으로 돌아오는 길.
추측이 꼬리를 물었다.
제보가 샜나.
제보자가 배신했나.
아니면 누군가 내 취재를 막았나.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내가 팀을 난감하고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회의실에서 나는 말했다.
“내가 직접 현장을 답사하고 제보자를 만났음에도… 내가 실수한 것 같다.”
그때 후배들이 말했다.
“선배님, 취소된 취재잖아요.
빨리 다음 아이템 찾죠.
우리 팀이잖아요.”
그 말이 고마워서 목이 잠겼다.
후배가 선배를 사랑하는 방식은,
대개 이런 식이다.
실패를 꾸짖지 않고, 수습을 먼저 한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다음 아이템은 내가 혼자 맡는다.
다른 PD들은 각자 자기 것에 매진해.
나는 6mm 카메라 두 대와 VJ 1명이면 돼“
그건 고집이기도 했고, 보호본능이기도 했다.
팀장의 불찰로 후배들이 흔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시사팀의 선배 사랑은 대개 이런 모양이다.
“내가 책임질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안다.
그 말을 제일 믿어주는 건 결국 후배들이라는 걸.
시간은 없었다.
나는 새 아이템을 찾았다.
사전조사, 취재, 편집, 원고.
밤새 원고를 쓴 작가는 방송이 나간 후 방광염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리고 방송은 대박이었다.
그 내용은 “노래방의 퇴폐 현장”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생수 공장의 실패가 내게 준 건 ‘패배’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현장은 늘 변하고, 산업은 늘 과열되고, 돈이 되는 곳엔 늘 어둠이 생긴다.
그리고 시사 PD는 그 어둠을 찍기 위해
계절과 밤과 허기짐과 피곤함 그리고 방송일정과 책임감까지 전부 끌어안는다.
하지만 그 모든 고생을 버티게 하는 건
대개 거창한 정의감 하나가 아니다.
함께 고생하는 사람들.
후배의 선배사랑, 선배의 후배사랑.
그게 결국, 다시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고,
나를 현장에 있게했다.
그 때를 함깨한 사랑하는 후배PD 이진욱,송영석,강민희,이명희,연종우,김가람,고국진,최지훈
우리 시사팀 최고의 작가 심수영,박혜령,정지영,이선이,이민아가 그들이다.
우리는 후회 없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