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에서 프로듀서로, 한 방송인의 기록
제 1편
그날, 게시판을 열었다
아침 뉴스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난방은 켜져 있었지만 공기가 썰렁했다.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따라 뉴스가 깔끔하게 끝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매일 하던 방송인데,
어딘가 모서리가 남은 것처럼 마음이 걸렸다.
이 시간의 사무실은 언제나 그렇듯
나 혼자였다.
라디오 방송 준비를 마치고
지하 부스로 내려갔다.
아침 8시 30분부터 30분.
그날의 새 소식과
밤새 쌓인 이슈,
전문가 연결까지.
내 하루는 부산에서 새벽 3시에 시작된다.
울산으로 와서
아침 TV 뉴스, 라디오 프로그램,
그리고 정오 뉴스까지.
새벽에 시작한 하루는
오후 2시면 끝난다.
오전 9시 시보와 함께
일단 오늘의 방송은 마무리됐다.
정오 뉴스 하나만 남겨두고 있었다.
사무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잠시 휴게실에서
동료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휴게실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전화가 왔다고 했다.
“최 아나운서, 나야.”
부장이었다.
“어디 있어. 잠깐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울산 KBS로 발령받아
뉴스와 라디오를 진행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였다.
주변의 말들은 늘 많았다.
뉴스 잘한다,
목소리가 좋다,
인상이 괜찮다,
결혼은 했느냐.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뉴스와 라디오 진행에 대한 평가였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방송하는 사람들은 팔자가 세다.”
32년을 일하고 나서야
그 말의 뜻을 알겠다.
돌이켜보면
나만큼 센 바람을 안고 온 팔자가 또 있을까 싶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써볼 생각이다.
“네, 부장님.”
“게시판에 너 얘기가 좀 올라왔어.”
그때 나는 서른살 이었다.
KBS에 들어오기까지
이미 산전수전은 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한번 들어가서 읽어봐.
고칠 거 있으면 고치고.”
시청자 게시판이라 해봐야
보통은 발음,
장단음,
시선 처리,
의상 같은 이야기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게시판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첫 글은 이랬다.
“최국만 아나운서님,
아침 뉴스 잘 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외람되게 건의드립니다.
뉴스할 때 입고 나오는 상의 자켓이
하나밖에 없나요?
일주일을 지켜봐도
매일 같은 곤색 자켓만 입고 나오네요.”
다음 글.
“뉴스를 보다 보면
북한 사투리가 들립니다.
아나운서 발음에
사투리가 섞여 나오는 건
문제 아닌가요?”
또 다른 글.
“자세히 보면
양쪽 눈썹 끝이 없어 보여서
이상해 보입니다.
요즘은 문신으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도
말들이 이어졌다.
방송 시작 두 달 만에
내 이름이 이렇게 오르내리는 걸 보며
‘아, 정말 팔자가 세긴 세구나’
싶었다.
정오 뉴스를 마치고 퇴근했다.
게시판을 보고 나왔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형 둘은 이미 분가했고
막내인 내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내는
기꺼이 시부모를 모시고 있었다.
그때 아내 나이는 스물세살이었다.
집에 들어오자
아내가 먼저 물었다.
“여보,
오늘 방송국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그냥 말했다.
“응,
시청자 게시판에
내 얘기가 좀 올라왔어.”
그날 저녁,
나는 방송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뉴스보다
게시판을 오래 보고 있었고,
아나운서보다
한 사람으로 먼저 서 있었던 것 같다.
집에서나,뉴스룸 분장실에서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무엇부터 어떻게 풀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