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복지는 부모가 혼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족 이후를 준비하지 않는 우리 사회

by 최국만


제7편


기종이는 정서적 감정의 교류가 어렵다.

기종이는 어머니와 40년 넘게 이곳에 살고 있다.


유년기,청소년기,청년기를 다 보냈다.

이제 기종이 나이 41세다.

행여 낯선 사람이 다가올 때도

늘 어머니의 행동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 어머니의 행동이 멈추는 날이 오면

그 다음은

누가 이어받게 될까.


이 질문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늘 마음 한구석에 놓여 있는 질문이다.


부모는 나이를 먹고,

몸은 느려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오늘’보다 ‘이후’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 이후는

대개 말해지지 않는다.

혹은 너무 쉽게

한 단어로 정리된다.


시설.


시설은

대안처럼 말해지지만

사실은 준비되지 않은 사회가

마지막에 꺼내는 카드에 가깝다.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선진국의 장애인복지는

부모가 사라진 이후를

가족에게 맡기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족에게만 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묻는다.

이 사람은 어디서 살아왔는지,

어떤 동네에 익숙한지,

누구의 얼굴을 보면 편안해하는지.


그리고 그 질문을

부모가 살아 있을 때부터 시작한다.


우리 사회는 다르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맡긴다.

그리고 부모가 사라진 뒤에야

제도가 움직인다.


그 사이에는

너무 긴 공백이 있다.


기종이 어머니의 삶은

헌신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 헌신은 사랑이었지만,

동시에 선택지가 없었던 결과이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가

그 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잡아주었다면,

어머니의 40년은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까.


진짜 복지는

부모를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혼자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이 말이

제도에서 먼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말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는

손을 놓지 못한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는

자신이 아픈 것을 숨기고,

어떤 부모는

자신의 죽음을 미루듯 살아간다.


아이를 혼자 두게 될

그 날을 생각하면

차라리 오늘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 마음을

누가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부모의 손이 멈춘 뒤를

그때 가서 고민하는 사회는

이미 늦은 사회라고.


준비는

항상 그 이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기종이가 아직 집에 있는 지금,

어머니의 손이 아직 따뜻한 지금,

우리는 묻고 준비해야 한다.


부모 이후의 삶을

시설 하나로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과연 만들 의지가 있는지.


부모의 손이 멈춘 자리에

또 다른 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회라면,

부모는

조금 덜 두려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복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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