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제도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제8편
기종이를 떠올리며
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거창한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커서
우리가 자주 피했던 질문이다.
장애인복지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곧바로 말한다.
“그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복지는
한 주체가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손이 이어질 때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먼저, 개인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우리는
장애인을 ‘돕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기종이가 폭행당할 때 ,그를 본 사람은
왜 침묵하고 있었을까
6개월 이상 방에서 두문분출할 때도 어느 누구도
기종이를 돌보지 않았다.
이제는 개인이 변해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늦어져도 짜증 내지 않는 일,
말이 느린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시선을 피하지 않는 일.
이 작은 태도 하나가
사람을 시설로 밀어내기도 하고,
지역으로 붙잡아 두기도 한다.
다음은 이웃의 몫이다.
이웃은
가장 약하지만
가장 강력한 복지 주체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필요하면 말하세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탈시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완벽한 제도 때문이 아니라
이웃이 먼저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결코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쓰레기 버리는 시간,
마주치는 인사,
같은 동네라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그 다음은
장애인단체의 역할이다.
장애인단체는
‘대변자’가 아니라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정책 언어로 바꾸고,
개인의 삶을
제도의 문장으로 옮기는 일.
시설 반대라는 구호를 넘어서
“그럼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현장의 이야기가
정책의 출발점이 될 때,
단체는 비로소 힘을 가진다.
그리고 정부의 책임이 있다.
정부는
예산을 늘리는 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시설을 짓는 데 쓰이는 돈보다
사람이 지역에 머물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드는 데 쓰이는 돈이
더 많아져야 한다.
주거, 돌봄, 일상 지원이
‘사건 이후’가 아니라
‘사건 이전’에 작동해야 한다.
복지는
문제가 생긴 뒤의 대응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삶을 설계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기종이에게 돌아온다.
기종이는
아직 집에 있다.
아직 어머니의 손 안에 있다.
그러나 이 ‘아직’이
불안이 아니라
가능성이 되려면,
우리 모두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종이의 미래가
시설 하나로만 정리되지 않도록,
그의 삶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복지는
장애인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사회를 조금 느리게,
조금 넓게,
조금 더 함께 살 수 있게
바꾸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러나 그 작음이
모일 때 방향이 된다.
그 방향이
기종이의 겨울을
조금이라도 짧게 만든다면,
이 질문은
이미 충분한 답을 얻은 셈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늘,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