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에서 프로듀서로, 한 방송인의 기록
제3편
결국 나는, 이 자리에 남았다
아나운서를 3년 했다.
프로듀서는 29년을 했다.
숫자로만 보면
아나운서는 짧고
프로듀서는 길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그 둘이 정확히 이어져 있다.
아나운서로 있던 3년 동안
나는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 자리는
나에게 충분히 무거웠고,
그만큼 진지하게 임했다.
그리고 나는
말하는 사람의 자리를 내려놓고
만드는 사람의 자리로 옮겼다.
프로듀서로 전직한 뒤
29년 동안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나운서였던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
카메라 앞에서
말 한 문장이 어떤 무게로 전달되는지,
침묵이 언제 필요한지,
한 단어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오래 남는지.
나는
말을 하던 사람의 몸으로
말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나에 관한 일들은
결국 다 나에게
연기로 되어 왔다는 것.
시사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은
아나운서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곳에는
박수도 없었고
얼굴도 없었다.
대신
고통과 고난,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매 프로그램마다
고뇌가 따라왔다.
이 이야기를
지금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누군가의 삶을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내 몸도 함께 무너졌다.
고혈압,
심근경색,
뇌수축,
교통사고로 인한
어깨 인대 파손.
가스 중독으로 입원.
그리고
아내의 병원 입원.
불행은
한 번에 오지 않았다.
파도처럼
연달아 밀려왔다.
그때는
왜 이렇게까지
나에게 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 프로그램이 되었고,
그들의 고통이
내 고민이 되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버텼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나는
유명한 방송인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다만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이크 앞에서든,
카메라 뒤에서든.
그래서인지
이제는
어느 자리에 있었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아나운서로서
나는 충분히 말했고,
프로듀서로서
나는 충분히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남기고 싶은 것은
이 두 시간이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이는 시간을 살았고,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뎠다.
그 둘이 합쳐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영원한 방송인으로 남고 싶다는 말은
계속 화면에 나오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뜻이다.
그것이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였고,
지금도 이 일을
놓지 않는 이유다.
나는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다.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놓던 마음으로.
그리고 그 마음만큼은
아직
내 안에서
조용히 방송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