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시간, 보이지 않는 시간

아나운서에서 프로듀서로, 한 방송인의 기록

by 최국만


제4편

방송을 오래 한 사람이, 이제 독자의 자리에 서서


이 연재를 쓰며

나는 여러 번 멈춰 섰다.


이 이야기가

방송을 한 사람의 회고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랐고,

방송을 보는 사람에게도

자기 이야기처럼 닿기를 바랐다.


나는

아나운서를 3년 했고,

프로듀서를 29년 했다.


그 시간 동안

방송은 늘 내 삶의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방송이 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방송은

능숙해질수록

더 어려워지는 일이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말하지 말아야 할 순간을 아는 일이 더 어려웠고,

속보를 전하는 것보다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더 힘들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의 자리에서

나는 자주 독자가 되었다.


이 장면을

내가 집에서 보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말이

내 가족에게 향해 있다면

괜찮을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는 날은

방송이

이미 위험해진 날이었다.


방송인은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지만,

독자는

그 정보를 자기 삶에 들여놓는 사람이다.


그래서

방송은 언제나

독자의 자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며

고통과 고난의 현장을

수없이 마주했다.


그때마다

이야기를 얼마나 강하게 보여줄 것인지보다

어디서 멈출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진실을 말하는 일과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종종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 경계를

조심스럽게 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그게 내가 배운

방송인의 태도였다.


이제 예순여덟이 되어

나는 조금 다른 자리에서

방송을 바라본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느낄 때도 있고,

확인보다 해석이 먼저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방송인으로서가 아니라

독자로서 불안해진다.


이 말은 사실일까.

이 보도는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방송은

결국 진실이어야 하고,

그 진실을 향하는 과정은

정의에 닿아 있어야 하며,

그 모든 출발점은

흔들리지 않는 팩트여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무너지면

방송은

설명이 아니라 주장으로 변하고,

보도는

정보가 아니라 소음이 된다.


나는

완벽한 방송인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방송이 사람 위에 서지 않도록,

사람을 재료처럼 쓰지 않도록

끝까지 경계하려 했다.


그게

공영방송에서 오래 일한

한 사람의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방송인이 있다면

나와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이 만드는 방송 앞에서

한 번쯤

독자의 자리에 서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이 말을 남기고 싶다.


방송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진실과 정의, 팩트를 놓지 않기를

지켜봐 달라고.


나는 이제

앞에 서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방송을 바라본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다.


그 마음이 남아 있는 한,

나는

방송을 떠난 적이 없다.


그리고

방송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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