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층에서 내려온 무거운 합판과 나의 영어 단어장

흉터로 남은 훈장, 그해 8월의 합격증

by 최국만


1970년대,

집에서 막노동 현장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이 걸렸다.


오전 7시라는 시작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보이기 시작하면

중장비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나에게 그 소리는 활기찬 노동의 신호가 아니라,

일종의 공포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곳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다.


그해 8월에 있을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책값이라도 벌 요량으로 나온 현장,

시험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남들은 도서관에서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을 시간,

나는 먼지 자욱한 현장에서 하루를 견뎌야 했다.


"자, 어서 모이세요.

조적팀, 비계팀, 데모도팀은 각자 십장 따라가고!"

기술 없는 청년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으로 때우는 일뿐이었다.

다행히 체격이 좋아 목재를 나르거나 블록을 등에 얹어 올리는 일을 주로 맡았다.


어떤 보직을 맡느냐는 그날그날의 운이었다.


그날 내가 맡은 일은 '양생이 끝난 합판을 내리는 일'이었다.

10층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합판을 받아 옆에 쌓기만 하면 되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날'의 쉬운 작업이었다.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작업복 주머니에 손때 묻은 영어 단어 수첩을 넣고 다녔다.

합판 하나가 내려오고 다음 합판이 내려오기까지의 짧은 찰나.

그 벼랑 끝 같은 시간 속에서 외우는 단어는 이상하게도 머리에 쏙쏙 박혔다.


"자, 합판 내려간다!"


10층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분명 들었다. 그런데 내 정신은 단어 수첩 속에 팔려 있었다.

합판의 낙하지점에서 벗어났어야 했는데, 단어 하나에 골몰하다 그만 자리를 피하지 못했다.


"앗!"


비명과 함께 나는 주저앉았다.

줄을 타고 내려온 무거운 합판이 내 무릎 아래 뼈를 그대로 내리쳤다.

숨이 턱 막혔다.

뼈 부분이 깊게 파이고 붉은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나의 작은 수첩을 현장 반장이 집어 들었다.

"너 여기 영어 공부하러 왔어? 정신 안 차려?

이 위험한 현장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반장의 호통은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나의 부주의로 십장과 동료들에게 큰 폐를 끼쳤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사죄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현장에는 내 아버지도 계셨다.

인천에서 주유소 사장님 소리를 듣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막내아들의 고생을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다.


현장에서 아들과 마주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반장의 단호한 해고 통보가 떨어졌다.

그때가 마침 10시 새참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빵 하나와 우유 하나를 들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동료 한 분이 다가와 내 어깨를 다독였다.

"아버지한테 들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해서 이번 시험에 꼭 붙어라."


눈물이 핑 돌았다.


치료비로 쥐여준 얼마간의 돈과 빵, 우유를 들고 현장을 걸어 나왔다.

다리는 절뚝거렸지만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내가 감내해야 할 길이라면 기꺼이 가리라'고 다짐했다.


그해 8월,

나는 보란 듯이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금도 내무릎에 남은 흉터는 그 시절 내가 가졌던 간절함의 훈장이었다.

비록 그 현장은 공포였지만,

그곳에서 흘린 피와 땀이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뜨거운 밑거름이 되었음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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