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태양 아래서

열일곱 딸과 함께 배운 인간이라는 것

by 최국만


마흔둘의 나이에

나의 팔짱을 끼고 걷는 기종이와의 산책도 소중하지만,


내 생애 잊히지 않는 또 하나의 동행은

이십여 년 전,

열일곱 딸과 단둘이 떠난 15일간의 여행이다.




시작은 무모했다.


수능을 1년 앞둔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아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유럽을 간다고? 말이 되냐.”




하지만 딸은 달랐다.


“아빠랑 단둘이요? 좋아요.”

“실력대로 가면 되죠, 뭐.”


그 한마디는

어른보다 더 단단했다.




그렇게 우리는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폴란드 오시비엥침,

아우슈비츠에 서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

나는 사관학교를 동경하던 소년이었다.


전쟁사를 읽고,

장교를 꿈꾸며

인간의 힘과 전략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처음으로

전쟁이 남긴 ‘결과’를 마주했다.




가스실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차가운 벽,

닫힌 공간,

그리고 남겨진 흔적들.




벽면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손톱으로 긁어낸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말이 없었지만,

그 흔적은 너무 또렷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약 11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그 숫자는

설명처럼 들리지만,


그날 그 공간에서는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으로 느껴졌다.




딸이 내 옆에서 말했다.


“아빠… 어린아이 신발이 너무 많아.”

“이건… 말이 안 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많이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같이 서 있었고,

같이 바라보았고,

같이 견뎠다.




그날 이후

딸은 조금 달라졌다.


무언가를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쉽게 판단하지 않았고,

사람을 볼 때 더 오래 바라보았다.




체코에서 슬로바키아로 넘어가는 길,

창밖의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초록의 들판과

고요한 마을들.




우리는 그 풍경을 보며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딸이 말했다.


“아빠…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끝내 답하지 못했다.




그 여행은

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리고

나의 시선도 바꾸어 놓았다.




딸은 약속대로

자신의 길을 걸었고,

지금은 독일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끔 만나면

우리는 그 여름을 이야기한다.




“아빠, 그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좋았어.”

“아빠랑 단둘이 있었던 그 시간이.”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용히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가장 깊이 연결되는 순간은

기쁠 때가 아니라,


같이 아픔을 마주할 때라는 것을.




아우슈비츠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우리는

아버지와 딸을 넘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도

기종이의 팔짱을 끼고 걷는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저

같이 걷는 것.




그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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