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태워 지핀 불꽃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간다

by 최국만


나는 부모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믿음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그 믿음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기적이 아니었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건네받은 한 그릇의 죽,

그리고 우유 한 잔에서 시작된 생존의 기록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님은 북한에서 내려왔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목숨만 건져 올린 처절한 피난이었다.

지금의 인천 인하대학교 자리는 당시 피난민 수용소였다.

바람조차 막지 못할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곳.


전쟁은 끝났으나 삶은 더 가혹해졌다.

일터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다.

판잣집 골목마다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어느 집에서는 매일같이 곡소리가 들렸다.

영양실조와 폐병이 소리 없이 사람들을 데려가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본래 북한에서 무속신앙을 깊이 믿던 분들이었다.

“예수가 어디 있어.”

“천당, 지옥 다 거짓말이지.”

그 말은 아버지의 신념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견고한 신념도 배고픔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아버지는 폐결핵에 걸렸다. 그 시절 결핵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의사는 잘 먹어야 한다며 단백질 섭취를 권했지만,

그것은 방법이 아니라 절망에 가까운 조언이었다.

그때 수용소에는 미국 선교사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며 굶주린 이들에게 우유와 달걀을 나누어 주었고,

결핵 환자들에게 약을 건넸다.


예수를 부정하던 아버지가 그곳으로 향했다.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

우유를 받았고, 달걀을 받았고, 약을 받았다.


추위가 심한 밤이면 아버지는 선교사들이 나눠준 성경책을 뜯어 아궁이에 던졌다.

불을 지펴 방을 데우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밤을 버티고, 다음 날 다시 우유를 받으러 교회에 갈 수 있었으니까.


수용소에서는 폐병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살아남았다.

그리고 훗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먹을 것 얻으러 간 게 맞다.

그런데 그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 조금씩 알게 됐다.”

그 한마디가 우리 집 신앙의 뿌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인천에 터를 잡았다.

삶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형 둘과 나, 우리는 모태신앙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선한 분이었고 형님들도 정이 많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랑과 나눔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거의 죽어가던 사람이 우유 한 잔과 달걀 하나로 다시 일어났다는 이야기,

그 기억은 내 안에 깊은 문신처럼 남았다.


그 기억이 내 인생의 방향을 정했을지도 모른다.

방송국에 들어간 뒤, 나는 가장 고되다는 시사 프로그램을 30년 동안 만들었다.

억울한 사람들,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 말할 힘조차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떠올렸다.


‘누군가 아버지를 살렸듯, 나도 누군가의 삶을 붙들어야 한다.’

결혼 후에도 우리 가족은 신앙의 자리를 지켰다.

아내와 나, 아들이 성가대에서 찬양을 할 때면 자주 눈시울이 붉어졌다.

공중기도를 맡을 때면 나는 종종 수용소 판잣집을 떠올렸다.


빵 한 조각을 받으러 교회 문을 두드리던 청년 시절의 아버지.

그 간절한 모습이 내 신앙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퇴직 후 선교사가 되어 아버지를 살려준 이들처럼 살고 싶었다.

아내도 뜻을 같이했다. 우리는 함께 공부했고 기도하며 준비했다.


면접에서 구원의 확신을 묻는 말에 나는 내 삶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답했다.

결과는 둘 다 불합격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합격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 밖으로 보내셨다는 것을.

강단이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아픔을 듣게 하려 하셨음을.

나는 목사가 되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곁을 오래 지켰다.


카메라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다.

돌아보면 그 길 역시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이었고,

나는 그 뒤를 서툴게 따라 걸어온 셈이다.


아버지는 성경을 뜯어 불을 지폈다.

하지만 그 불씨는 우리 가족의 삶을 오랫동안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믿음은 기적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살린 기억 속에서 자라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길을 천천히 걷는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을,

이제는 조용히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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