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동 33번 버스

우리를 다음 인생으로 데려다주었다

by 최국만



새벽 네 시.

집 안은 아직 밤이었다.


옆방에서 부모님이 주무시는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부엌 불이 켜졌다.

아내가 작은 가방에 간식을 넣고 있었다.


“여보, 일어나요. 첫차 타려면 지금 나가야 해요.”


그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나는 그때 이미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퇴직 이후, 머릿속에는 한 문장만 떠돌았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2월 초,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 형편도 아직 봄을 모른 채였다.


버스를 타는 곳까지는 걸어서 20분.

만덕동 언덕길은 새벽 공기 속에서 유난히 가팔랐다.

이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구포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공사판에서 하루를 버는 이들이었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공부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만덕동 33번 버스 첫차.

새벽 5시 출발.


그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

다시 내려서 20분을 걸어 올라가면

부산 초읍도서관이 나왔다.


문 여는 시간은 아침 7시.

하지만 6시 반이면 이미 100명 가까이 줄을 서 있었다.


자리를 먼저 잡기 위해.

어쩌면, 인생의 자리를 먼저 잡기 위해.




나는 대학 시절 총학생회 간부였다.

학교 추천으로 경남 창원의 자동차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총무부 일은 내 길이 아니었다.

적성도 맞지 않았고, 월급은 부산에서 출퇴근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한 달을 버티다 사표를 냈다.


부모님은 기뻐하셨던 첫 월급을 아직 기억하고 계셨을 텐데

나는 그 기대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여보, 사표 잘 냈어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요.

우리, 도서관 가요.”


그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초읍도서관의 아침


성인열람실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바늘 하나 떨어져도 들릴 만큼 고요한 공간.

새벽부터 서둘러 온몸은 따뜻한 실내 공기에 스르르 풀렸다.

졸음이 쏟아졌다.


내 옆에는 아내가 앉아 있었다.

자기 공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가 혼자 흔들리지 않게 옆을 지키기 위해.


나는 한국전기통신공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험은 11월, 남은 시간은 9개월.


미래는 불확실했고

현재는 가난했고

자존심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래도

옆자리에 아내가 있으면

공부는 견딜 만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면 두 덩이를 삶아 건져놓고

수프 푼 물을 부어주던

그 팅팅 불은 라면.


그게 우리 점심이었다.


지금도 가끔 말한다.


“여보, 초읍도서관 라면 먹고 싶지 않아?”


그 라면에는

젊음이 들어 있었고

불안이 들어 있었고

서로를 믿던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11월 시험을 준비하던 중

9월에 먼저 공고가 난

KBS 공채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합격했다.


인생은 가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문이 열린다.

하지만 그 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건

대개 이런 시간들이다.


새벽 네 시 기상

추운 언덕길

첫차 버스

도서관 줄

라면 두 그릇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던 한 사람.



지금의 만덕동


지금도 부산에 내려가면

형님 댁에 들렀다가 만덕동 언덕을 지난다.


가끔 33번 버스가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걸 본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저 버스 안에

우리 부부의 청춘이 아직 타고 있겠구나.


스물셋, 가냘펐던 아내.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나.


이제는 중년이 된 아내가

그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를

나는 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내 불확실한 미래에

기꺼이 투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덕동 33번 버스는

우리를 도서관으로 데려다준 게 아니라


우리의 다음 인생으로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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