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직은 아내가 차려준 밥상 위에서 시작되었다

30가지 음식에 담긴 사랑의 의미

by 최국만


학생에게는 1년에 두 번의 방학이 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방학은 작은 천국이다.


어른이 되면 방학이라는 말은 사라진다.

대신 휴식, 여유, 쉼이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런데 나는 인생에서 한 번,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학’을 맞았다.


퇴직이었다.




나는 퇴직을 준비했고,


아내는 나의 방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여보, PD가 총 몇 명이에요? 다들 참석할 수 있어요?”

“왜?”

“당신 다음 달 퇴직이잖아요. 우리 집에서 퇴직 파티 하려고.”


순간 고마움보다 먼저 떠오른 건 걱정이었다.

우리 부부 포함 15명.

그 많은 음식을 아내가 혼자 준비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다 해…”

“괜찮아. 한 달 남았잖아. 하루에 하나씩 준비하면 돼.”


아내의 말은 늘 그렇게 단순했고,

그래서 더 말릴 수가 없었다.




그때도 그랬다


임신한 몸으로 집들이 음식을 하던 사람


아내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발령받았을 때,

새로운 동료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집들이를 고민하던 내게

아내가 말했다.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요. 내가 준비할게.”


그때 아내는 막내딸을 임신 중이었다.

건강한 체질도 아니어서 늘 조심해야 했다.


“여자 아나운서들 보내서 도와주라고 할게.”

“아니. 우리가 초대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손님이 일을 해.”


퇴근하면 아내는 혼자 주방에서 서 있었다.

언제 배웠는지 모를 음식들이 끝없이 나왔다.


나는 그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걱정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부부니까 당연한 거지.”

그게 당시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집들이 다음 날,

아내는 하혈을 했다.


병원에 함께 가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 아이가 올해 5월에 엄마와 엄마 친구를 초대해
한 달을 독일에서 보낸다.


시간은 흘렀지만

내 마음속 미안함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번에도, 아내는 혼자였다


퇴직 파티 준비는 상상 이상이었다.

냉동실에는 하나둘씩 음식이 쌓여갔다.

밑반찬, 전, 튀김, 장아찌, 고기요리…


종류가 30가지가 넘었다.


한여름 더위 속에서

아내는 매일 주방에 섰다.


나는 출근했고

아내는 요리를 했다.


“여보, 이거 한번 먹어봐. 맛 괜찮지?”


그 말에

나는 맛만 평가했다.


그 음식이

아내의 시간이고

아내의 체력이고

아내의 사랑이라는 걸

그때도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나는 변하지 않는 줄 알았다


하지만 변했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이제 안다.


나는 변했다.


아내의 흰머리를 보면서,

아내의 손마디가 굵어지는 걸 보면서,

아내가 더 이상 예전처럼 쉽게 피로를 회복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가 여전히

연애하던 시절처럼 나를 대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날 밤,


나는 인생의 방학을 받았다


저녁 7시.

시사팀 동료들이 도착했다.


거실 조명 아래 길게 차려진 음식들.

그건 요리가 아니라

아내가 40년 동안 나에게 건네온 마음의 총합 같았다.


웃음이 오가고

술잔이 돌고

퇴직을 축하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때 아내가 가방에서 커다란 현수막을 꺼냈다.


“최국만PD 방학식“


나는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봤다.


세상을 향해 달려가느라

가족에게 미안했던 시간들,

아내에게 당연하게 받기만 했던 세월들,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 인생의 방학은

회사 문을 나서는 날 시작된 게 아니었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 위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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