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출근부 앞에 모인 사람들,
앞치마를 챙기는 손,
오늘 일정을 확인하는 눈빛들.
우리 센터의 활동지원사 가운데
여성 비율은 80퍼센트가 넘는다.
남성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다.
처음에는 그 숫자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저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개인의 선택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애인활동지원사다.
이 일은 단순히 신체를 돕는 일이 아니다.
병원에 동행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이다.
말보다 표정이 먼저이고,
속도보다 관계가 먼저인 노동이다.
이 일의 현장에서 여성들이 많은 이유는 분명 있다.
오랫동안 돌봄은 여성의 몫으로 여겨져 왔고,
경력단절 이후 다시 사회로 나오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혹은 자신의 시간을 사회와 다시 연결하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오는 여성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남성들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과거에 비하면 분명 참여는 늘고 있다.
현장에서도 젊은 남성 활동지원사들을 가끔 만난다.
성별과 무관하게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아직은,
구조적으로 남성의 참여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임금 수준의 문제도 있고,
돌봄을 전문 직업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적 인식도 있다.
“남자가 하기엔 애매한 일”이라는 막연한 편견이 남아 있기도 하다.
또 어떤 남성들은 하고 싶어도 가족의 기대나 경제적 조건 때문에 선택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남성과 여성의 대립으로 볼 수는 없다.
이것은 역할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습관의 문제에 가깝다.
얼마 전 실습을 온 한 여성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 일 하신다고 남편은 뭐라고 하세요?”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남편은 퇴직하고 집에 있어요. 몸이 좀 안 좋아서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는 현장에 나오고,
누군가는 집을 지킨다.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다.
돌봄은 단순히 직업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누가 얼마만큼 감당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나는 남성 활동지원사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 일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를 맞추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
누군가의 걸음을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의 불안을 대신 감당해 본 적이 있는가.
돌봄은 약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나는 이 현장에서 배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다.
돌봄은 특정 성별의 일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야 할 삶의 일부인가.
과거보다 남성의 참여는 늘었다.
그러나 아직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난이 아니라,
조금 더 함께 고민해 보자는 제안으로 이 말을 남기고 싶다.
돌봄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관계의 일이라면,
그 책임 또한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현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한다.
우리는
돌봄을 누구의 얼굴로 남기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