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실습생 어르신이 가르쳐준 ‘곁을 지키는법‘

“ 제 아내를 돌보려고 왔습니다”

by 최국만


늦은 오후였다.

장애인복지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최 선생님, 내일 실습생 한 분 보내도 될까요.

연세가 좀 많으신 분입니다.”


“몇 살이신데요?”


“74세요.”


잠시 말이 없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실습생 중에 그렇게 연세가 많은 분은 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기종아, 어젯밤 잘 잤지? 우리 기도하자.”


기도를 하고 차 한 잔을 마셨다.

기종이와 아침 차를 마시는 시간도 어느덧 6개월이 되었다.


“믹스커피 말고 선생님이 가져온 보이차 마셔보자.”


처음 몇 번은 마셨지만 기종이는 결국 다시 믹스커피로 돌아갔다.

나는 굳이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기종이의 속도대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뉴스를 이야기하고

가끔은 일부러 크게 웃는다.


“기종아, 선생님처럼 크게 웃어봐.”


기종이는 크게 웃지 않는다.

그저 살짝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오전 8시가 넘었는데 실습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동구 밖 경로당 앞까지 나가 기다렸다.


잠시 후

100미터 앞에 봉고차 한 대가 멈췄다.


차에서 한 노인이 내렸다.


“칠성마을에서 왔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올라왔다.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일흔넷입니다.”


나는 속으로 여러 생각을 했다.


생활이 어려워서일까.

퇴직 후 시간이 무료해서일까.

아니면 정말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일까.




세 시간 동안 실습을 진행했다.


우리는 기종이와 함께 그림도 그리고

동네 산책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실습이 끝날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이 일을 앞으로 하실 계획이십니까?”


노인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사실… 다른 장애인을 돌보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요?”


“제 아내를 돌보려고 왔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4년 전이었다.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충주로 내려가는 길.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다.


자동차 전용도로 램프를 도는 순간

차가 미끄러졌다.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아내는 앞유리에 크게 부딪혔다.


경추와 척추가 심하게 손상되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서울 대형병원에서 다시 수술을 했다.


2년 동안 병원에서 간호를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아내는 이제

서지도, 앉지도 못한다.




노인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저는 죄인입니다.”


“아내 생각을 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년 전

내 아내가 갑작스러운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자신이 대신 아프고 싶어진다.




노인은 계속 말했다.


“장애인 등록을 했습니다.

활동지원 시간은 300시간이 나왔습니다.”


오전, 오후로 활동지원사가 온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가 직접 돌보려고 합니다.”


그는 지난가을 교육을 받고

이제 실습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내가 밖을 보고 싶어 해서

리프트 차량도 샀습니다.”


“충주댐도 가고

경치 좋은 곳을 데리고 다닙니다.”




그는 자녀가 셋이다.


아들 둘, 딸 하나.


모두 결혼해 각자 살고 있다.


“젊었을 때는

농사짓느라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아내와 여행 다니며 살자고 했었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지금은… 우리 둘 뿐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결국 인간의 삶은

이렇게 둘로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둘 중 하나만 남는다.




실습이 끝나고 우리는 함께 차 있는 곳까지 걸어 내려왔다.


나는 휴대폰 번호를 적어 건넸다.


“어르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어르신, 건강하십시오.

그래야 아내를 돌볼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전부였다.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 생각했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또 사랑 때문에 무너진다.


그런데 어떤 사랑은

무너지지 않는다.


74세의 한 노인이

그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날

장애인을 돌보는 방법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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