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노인복지관에 갔다

67세, 노년이라는 이름을 배우는 중이다

by 최국만


“여보, 나도 이제 경로당 자동 가입이 됐대.”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당신이 벌써 노인이에요. 거긴 70대, 80대 어르신들이 가는 데지.”


나는 웃었다.

법적으로 나는 이미 노인이다.

기초연금 대상자.

노인복지 혜택 가능 연령.


숫자는 정확하다. 67.


그런데 ‘노인’이라는 단어는

내 귀에 아직 어색했다.

마치 남의 호칭 같았다.




괴산노인복지관 앞에서


퇴근 후 차를 돌렸다.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주차장은 꽉 차 있었다.

“설마 이렇게 많을 줄이야.”


노인들은 집에만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내가 만든 편견이었다.


복지관 입구는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점심 배식 줄이었다.




1500원의 점심


“늦게 왔으면 뒤로 가시요.”

“의자 내 자리여.”


줄은 식당 앞에서 길게 이어져 있었다.

12시부터 배식.

200명 한정.


점심값은 1500원.


요즘 괴산읍에서 15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까.

커피 한 잔 값에도 못 미친다.


나는 그 줄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60만 원 안팎.

기초연금을 더해도

한 달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노인이 적지 않다.


통계는 건조하다.

하지만 그 건조한 숫자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얼굴들이다.




세월이 쌓인 얼굴들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인데 점퍼는 얇았다.

손등엔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 뒤에 선 할머니는

비닐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이분들은

한 시대를 통째로 견딘 사람들이다.


전쟁 이후의 가난,

산업화의 현장,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붓던 세월.


그 시대를 버텨냈지만

노후는 스스로 준비할 틈이 없었다.


우리는 ‘효’를 말하지만

현실은 각자의 생존이 버거운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노인복지관의 점심 줄은

단순한 식사 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노년의 초상이다.




너무 조용한 식탁


식판을 받아 들고

각자의 자리에 앉는다.


조용하다.


밥 먹는 소리만 들린다.


나는 오히려

조금은 더 시끄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음소리도,

불평도,

농담도.


노년이 가난할 수는 있어도

노년이 침묵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2층 복도에서 멈추다


행정복지팀은 점심시간이라 비어 있었다.

복도 벽에 붙은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2026년 노년사회화교육 시간표“


컴퓨터 교육, 건강 체조, 스마트폰 활용.


나는 한참 그 앞에 서 있었다.


노년은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배움의 주체일 수 있다는 문장 같았다.


돌아오는 길,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노년은

준비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너무 크다.


어떤 노년은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어떤 노년은

1500원의 점심 줄에 선다.


하지만 그 차이가

존엄의 차이는 아니다.


나는 오늘

노인복지관에서

두 가지를 보았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불균형.


또 하나는

그 속에서도 줄을 서고,

자리를 지키고,

조용히 밥을 먹는

노년의 품위였다.



나는 이제 인정하려 한다.


노년은 패배가 아니다.

노년은 통과다.


가진 것이 적어도

기죽지 말자.


줄을 서도

당당하게 서자.


나는 오늘

노인복지관에 갔다.


그리고

‘노인’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내 이름 옆에 조용히 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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