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의 시간, 그리고 도서관에서 이어지는 우리의 시간
새벽 다섯 시.
이제는 알람이 없어도
눈이 먼저 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몸이 주방으로 향한다.
아내를 위해 아침을 준비한 지
석 달.
처음에는 서툴렀다.
칼질은 어색했고,
불 앞에 서 있는 시간도 낯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생각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고,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이 시간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제야
아침을 안다.
조용한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고
그릇을 씻으며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이들을 챙기고,
밥을 하고,
그 와중에 직장까지 다녔던 시간들.
그때 아내는
얼마나 바쁘고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질문은
매일 반복되지만
대답은 늘 같다.
나는 그 시간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는 것.
아내는 요즘
하루의 대부분을
자수에 쏟는다.
독일에 있는 딸에게 갈 날을 기다리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천 위에 시간을 수놓는다.
작은 바늘 끝에서
하루가 지나가고,
그 안에
아내의 마음이 켜켜이 쌓인다.
말없이 바늘을 움직이는 그 모습은
고요하지만 깊다.
나는 그 옆에서
그 시간을 조용히 바라본다.
일을 마치고 나면
나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늘
아내가 먼저 와 있다.
책을 읽고 있거나,
자수를 놓고 있거나,
혹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다.
우리는 마주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말은 많지 않지만
그 시간은 이상하게도
하루 중 가장 평온하다.
가끔 아내는
류시화 시인의 시집을 펼쳐 든다.
특히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좋아한다.
아내는 말하지 않지만
그 시 속 어딘가에
자신의 마음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아내가 싸 온 김밥을 꺼낸다.
함께 점심을 먹다가
문득 아내가 말한다.
“여보, 기억나?
결혼 초에 새벽 네 시 버스 타고
부산 초읍도서관 다니던 거.”
그때는 모든 것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나는 생각한다.
이런 날이 올 줄
그때 우리는
정말 알았을까.
오후가 조금 기울면
우리는 함께 일어난다.
도서관 뒤
황톳길을 천천히 걷는다.
아내의 걸음은
예전보다 조금 느리다.
아직 병을 지나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함께 걷고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제 안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지만
함께 걷는 순간은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아침도, 사랑도,
늦게 알았다고 해서
늦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