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는 아직도 그곳에 숨 쉬고 있다,거리는 멀어도 마음은 고국에“
고향은 지리의 개념이 아니라 감정의 중심이다.
나는 지금 고국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땅에 있지만,
내 마음은 매일 그곳에 하늘과 계절과 사람들을 걷는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고국은 멀었지만 ,마음은 늘 닿아 있었다.
독립운동가 류자명 선생을 취재하러 중국에 도착했다.
한여름 베이징의 태양은 뜨겁고 맹렬했지만 ,
내 마음은 그보다 더 뜨거웠다.
류자명 선생의 딸을 만난 순간,나는 그의 삶 전체를 한눈에 본 것 같은 설렘과 숙연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어린 시절,학교에서 “아버지가 뭐 하시느냐”는 물으면 “장사하신다”고만 대답해야 했다는 말은 ,
말없이 조국을 위해 자신을 숨겨야 했던 아버지의 고뇌를 대변했다.
기념사진 속 김구 선생과 함께한 모습은 ,그가 단순한 항일투사가 아니라 의열단의 전략가이자 아나키스트였음을 말해주었다.
베이징을 떠나 텐진에 발을 디뎠을 때,나는 류자명 선생이 의열단의 비밀 참모로 ‘조선혁명선언‘을 기초하고
신채호 선생과 함께 혁명 이념을 세웠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가 단순히 폭탄을 던진 투사가 아니라 ,장엄한 이상을 전략으로 펼친 지식인이었음을 ,
텐진의 골목마다 흐르는 역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후난성은 ,
그가 농학박사로 후학을 양성하고 중국 농업 혁명에 기여한 학자의 삶이 있던 곳이었다.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지식으로 조선을 돕는 길’ 역시 선택했다.
그의 삶은 한 몸이지만 두 세계를 품은 궤적처럼 보였다.
충주에서 3.1 운동을 준비하다 일본경찰에 발각돼 망명길에 오르고,
중국에서 의열단에 속해 혁명 선언문을 만들고,
아나키스트 사상을 지키고,
마지막엔 농학 전문학자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던
그의 일생은 고국을 향한 사랑이 결코 열정만이 아니라 사유와 전략,그리고 꾸준함의 총합임을 보여준다.
나라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류자명 선생의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답한다.
조국은 땅 한 평이 아니라,나를 나로 있게 하는 사유의 뿌리이자 행동의 좌표라는것을 .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우리는 단순히 해방의 기쁨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의 해방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나라가 살아야 한다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가 사는 매일 속에서
조국의 의미를 다시 묻는 삶이다.
독립운동가 류자명 선생은 끝내 고국의 땅을 밟지 못했지만 ,그의 마음은 영원히 고국을 품고 움직였다.
그런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도 이렇게 서 있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오늘 어떤 마음으로 조국을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