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도 그림자가 있다

30년간 카메라 뒤에서 세상을 고발했던 한 PD의 고백

by 최국만

“정의에도 악이 있다”


이 성경 구절이 마음을 후벼 팠다.


나는 32년간 취재 현장에 있었다.

평PD에서 부장,국장이 된 뒤에도 후배들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볐다.


부정과 비리를 고발했고,

무너진 인권을 끌어 올렸으며,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짚었다.


그러나….

나는 과연 모든 순간,정의로웠던가?


내 삶은 쉽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사회라는 이름의 거친 파도를 너무 일찍 만났다.

박정희 정권 시절,배고픔과 억압이 일상이던 70년대 초.

어린 나이에 나는 인간의 탐욕,권력의 폭력,가진자들의 무책임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갈등은 ‘돈‘에서 비롯된다.


이 깨달음은 훗날 ,내가 방송을 하며 다시 마주한 수많은 취재 현장 속 진실들과 맞닿아 있었다.

방송국에 입사한 뒤 ,나는 처음엔 아나운서였다.

하지만 뉴스는 기자가 써준 원고,프로그램은 PD가 준 대본.

나는 다시 수동적 부속품에 된 듯한 답답함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선택했다.

“내가 주인이 되는 방송을 하자”


그리고 ‘시사고발 프로듀서‘의 길을 걸었다.

그것은 다시 거친 현장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나는 매주 불의와 싸웠다.


카메라가 향하는 곳엔 항상 진실이 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때로 너무 날카로워 그 진실을 마주한 이들의 삶을 베듯 찢어버리기도 했다.


“제발 이 방송만큼은 내보내지 말아 주세요….

제 아이가, 제 가족이 이걸 보면 아빠를,남편을,아들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수없이 들었던 이 말들.

어떤 이는 새벽에 집 앞까지 찾아와 울며 애원했고,

어떤 이는 방송이 나간 뒤 직장을 잃었다.


나는 공공성과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든 사정을 ‘응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거절했다.


주변에서는말이 많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삶이다”

“너무 메마르다”

‘정의롭지만 차갑다“

또 반면에 어떤 이들은 말했다.

“그렇게 해야 사회가 바뀝니다.”

“그래서 당신 방송은 믿고 봤습니다.”


이 모든 말 사이에서,

나는 때때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삶을 앗은 검‘이 아니었을까 자문한다.


퇴직 후 6년.

나는 내 삶을 ,방송을,그리고 취재의 무게를 되돌아본다.

“나는 과연,모든 순간 정의로웠는가?”

“그 ‘정의‘라는 이름으로 나는 타인의 삶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내가 고발한 대상들이 모두 죄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방송을 만드는 사람도 인간이기에,

우리는 항상 정의라는 이름 아래 숨어 있는 폭력성을 경계해야 한다.


정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의에도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휘두르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된다.

나는 지금 그 시절의 공과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사유하며 살아가겠다 다짐할 뿐이다.


젊은 날의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뛰었다.

지금의 나는 나를 돌아보며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정의’라는 이름에 깃든 자기 확신의 무서움을 한번쯤 돌아볼 수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