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과 소나무 불법 굴취의 실태
다음 주 방송 편집을 마치고 자정을 넘긴 시각,
편집실의 불빛만이 고요 속에 남아 있었다.
편집하면서 긴장으로 오른 혈압을 가라앉히려는 찰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 시각에 누가….” 짜증 섞인 마음으로 전화를 받자,
모 지역에서 오랜 지인인 분의 제보전화였다.
“최 PD님,제보 하나 할게요.강원도 000주목단지 아시죠?
그곳에서 주목나무를 야밤에 굴취해 나가고 있습니다.“
10여년 넘게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각지에서 제보를 받아왔지만,
주목나무 불법 굴취라는 말은 낯설지 않으면서도 심상치 않게 들렸다.
다음 날 ,제보자와 함께 000 현장으로 향했다.
눈 덮인 산길을 30여 분 걸어 올라간 현장에는 지름 2미터 가량의 웅덩이가 여러 개 파여 있었다.
그 자리에는 분명 오래된 주목나무가 서 있던 자리였다.
곁에는 동아줄,장갑,테이프,라면봉지 등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불법 굴취꾼들이 밤중에 서둘러 나무를 캐낸 흔적이었다.
제보자는 이렇게 말했다.
“굴착기를 다룬 사람한테 직접 들었습니다.이렇게 캐낸 나무는 돈 많은 이들에게 수천만 원,심지어 억 단위로 거래됩니다.
실제로 불법 굴취꾼들은 전국 산을 돌며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를 사진 찍어두고 ,구매자가 나타나면
뿌리돌림까지 마쳐둔 나무를 굴취해 판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대형 비닐하우스에 나무를 옮겨 ‘보관‘하다가 정원수로 둔갑시켜 판매한다.
문제는 굴취 후 운반이다.
일반인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이 동원된다.
작은 나무는 대형 고무다라통에 넣어 옮기고,큰 나무는 계곡 골짜기를 따라
장비를 이용해 산 아래로 내려 보낸다.
불법 굴취꾼들의 ‘기술‘은합법적인 조경업자도 놀랄 만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나는 000국립공원에서도 비슷한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국립공원 직원이 퇴근한 밤을 틈타 굴취꾼들이 대형고무다라통에 소나무를 담아 나오다 적발된 사례였다.
또 다른 사례는 겨울에 겨우살이를 채취하던 사람이 쉬려다 발견한 소나무 다섯 그루가 모두 뿌리돌림 상태였던 적도 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또다시 고급 정원의 ‘장식물’로 팔려갔을 것이다.
주목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도 있을 만큼 보존 가치가 높은 수종이다.
소나무 또한 한국인의 정서와 깊이 맞닿아 있다.
이런 나무들이 돈의 유혹에 의해 무참히 뽑혀 나가는 것은 단순한 재산적 손실을 넘어,
우리 산림의 정체성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일이다.
실제로 불법 굴취는 땅의 균형을 무너뜨리고,생태계의 연결망을 단절시킨다.
뿌리째 뽑혀간 자리에는 토양 침식이 일어나고,남은 숲은 건강성도 약화된다.
한 그루의 나무를 뽑아가는 것은 단순히 ‘나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산 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행위다.
방송 이후 많은 문제점이 개선되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수형이 뛰아난 노송이나 보호수에 유전자 칩을 삽입해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국립공원관리소의 순찰도 강화되었고,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가 불법 굴취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나무의 가치를 ‘돈’이 아닌 ’생명과 공공재‘로 인식할 때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산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른 척할 뿐이다.
주목과 소나무,그 한 그루 한 그루는 수십,수백 년 동안 인간을 대신해 바람을 막고,
공기를 정화하고,숲을 이루며 살아왔다.
그 나무를 한순간의 이익을 위해 도둑 맞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나는프로듀서시절,자정의 제보 전화로 시작된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무를 지키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을 지키는 일이디.”
한 겨울 그 추위에 우리 취재팀은 10여 일 잠복 취재를 했다.
그러나 위낙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불법굴취꾼 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