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망 위에서 시작된 한 생명의 인연
“여보, 구름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됐네.”
“그래도 우리 집에 와서 당신한테 듬뿍 사랑받았잖아. 뭉게랑 별이랑 행복하게 놀았고.”
아침 운동을 나서며 별이와 뭉게 눈을 마주쳤다.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두 아이를 보다가, 문득 3년 전 겨울이 떠올랐다. 생명을 맞이하는 일은 대개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떠나는 일 또한 그렇다. 그 사이의 시간만이 우리 몫이다.
1. 철망 속의 겨울
그날도 산책길이었다.
평소 둑방 대신 집 앞 도로를 따라 300미터쯤 걸었을 때였다. 별이가 갑자기 나를 끌었다.뭉게도 함께 짖었다.
정사각형 철망, 소위 ‘뜬 장’ 안에 스피츠 한 마리가 있었다.
눈은 털에 가려 있었고, 엉겨 붙은 털은 몸통을 질질 끌고 있었다. 바닥은 배설물이 빠지도록 틈이 벌어진 쇠창살. 밥도, 물도 없었다.
아내가 불렀다.
“메리야… 얼마나 춥고 배고프겠니.”
그 아이는 짖지도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눈으로 우리를 보았다. 아니, 아마도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래 방치된 존재의 눈빛은 이미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니까.
아내는 문을 열려했지만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날 산책을 마치고 주인에게 말했다.
“우리가 데려다 키워도 되겠나.”
주인은 태연했다.
“개장사 오면 줄라 했는데, 형님이 키우신다면 데려가세요. 거기서 4년 있었어요.”
4년.
하천 위 찬 바람을 맞으며, 발을 땅에 딛지 못한 채.
2. 이름을 바꾸는 일
아내는 그 아이를 안았다.
“우리 집에 가자. 내가 잘 보살펴 줄게.”
더운물로 목욕을 시키고, 눈을 가린 털을 자르고, 엉킨 몸을 풀어냈다. 두 번, 세 번 씻겼다.
가위질은 곧 기도였다.
그 아이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몸을 온전히 맡겼다. 사랑을 처음 경험하는 생명은 그렇게 조용하다.
개장에 내려놓았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놀랐다.
그 아이는 발을 땅에 딛지 못했다. 뜬장의 쇠창살 사이로 빠질까 봐, 네 발에 힘을 주고 서 있던 4년의 습관. 땅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몸.
나는 그날 처음으로 ‘학대’라는 단어를 속으로 꺼냈다.
우리는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똘똘이는 ‘구름’이 되었다.
한때 집을 떠난 고양이 구름을 그리워하던 우리 마음이, 이 아이에게 흘러갔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주는 일이다.
3. 연기(緣起)를 말하는 사람
구름이는 한 달쯤 지나자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꼬리를 흔들었고, 뭉게 와 별이 곁에 붙어 다녔다. 밥을 먹고, 햇볕을 쬐고, 밤이면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는 기적 같았다.
아내는 가끔 불경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연기법 알지? 모든 존재는 서로 기대어 있어. 구름이가 여기 온 것도 우연이 아니야. 우리가 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고, 우리가 선택받았기 때문이기도 해.”
나는 방송국에서 수많은 사건을 취재하며 인간의 잔혹함을 보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동물의 눈에서 세상의 윤회를 읽어냈다.
“생명은 혼자 있지 않아. 우리가 돌보면, 그 돌봄이 다시 우리를 살려.”
그 말이 그때는 조금 막연했는데, 지금은 안다. 구름 이를 씻기던 아내의 손길이, 사실은 우리를 씻기고 있었다는 것을.
4. 떠남의 방식
구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3년째 겨울이었다.
기침을 하고, 구토를 했다. “지켜보자”라고 말했지만, 생명의 시간은 늘 인간의 바람보다 짧다.
퇴근 후 개집으로 갔을 때, 구름이는 보이지 않았다.
평상 밑, 흰 털이 보였다.
“구름아…”
몸은 이미 굳어 있었다.
나는 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언제든 뭉게 와 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 햇살이 오래 머무는 자리.
아내는 울면서도 말했다.
“우리, 잘했어. 구름이 외롭지 않았어.”
그 말속에는 후회가 아니라 감사가 담겨 있었다.
3년은 짧았지만, 그 아이의 생애에서는 가장 따뜻한 계절이었을 것이다.
5. 햇살이 닿는 자리
오늘 아침, 구름이가 묻힌 곳에 유난히 햇살이 길게 비쳤다.
별이와 뭉게가 그 근처를 맴돌았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구름 이를 구한 것이 아니라, 구름이가 우리를 구한 것은 아닐까.
철망 속 생명을 외면하지 않은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인간이 되었다.
아내가 말하던 연기법은 거창한 교리가 아니라, 바로 그런 선택의 연쇄였다.
어느 겨울 아침
개 한 마리가 우리 길을 막았고
우리는 멈추어 섰다.
그 멈춤이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구름이는 지금도 햇살 속에서
우리 곁에 있다.
*** 표지 사진 오른쪽이 ‘구름’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