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을 들였다가, 다시 보내는 법
2부
“여보, 우리 개 한 마리 키워.”
미루마을은 전원주택의 이상을 최대한 구현한 곳이었다.
가로등이 없었다. 밤의 정취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전기 선로는 지중화했다. 산짐승이 빛에 놀라지 않도록, 자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산과 맞닿은 집들마다 개를 키웠다.
셰퍼드, 진돗개, 작은 반려견들.
밤이면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오갔다.
“개를 키우는 건 좋은데… 사람 하나 키우는 만큼 손이 가.”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마음은 기울어 있었다.
아내의 얼굴에 떠오른 그 기대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생명을 사 온다는 것
괴산 읍내에는 5일장이 섰다.
그 시절, 난전에서 강아지를 파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지금은 동물보호법으로 금지되었지만, 그때는 생명이 좌판 위에 놓여 있었다.
“생명을 돈으로 사 온다는 게 참 이상하지 않아요?”
아내가 말했다.
동물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현실이 불편했지만, 우리는 결국 한 아이를 데려왔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섰을 때, 거실 한가운데 황금빛 덩어리가 앉아 있었다.
30센티미터 남짓한 장모 골든 리트리버.
“참 잘생겼어.”
“내가 아는 분이 분양해줬어. 예쁘지?”
아내의 눈이 반짝였다.
그 순간, 이미 이름은 정해진 듯했다.
‘사랑’.
가족이 된다는 것
거실에서 키웠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덩치는 커지고, 발은 무거워졌다.
결국 마당에 울타리를 넓게 치고, 원목으로 집을 지었다.
목수가 웃었다.
“개집에 이렇게까지 하세요?”
아내는 단호했다.
“우리 집이 좋으면 개 집도 좋아야죠. 한 식구인데.”
그 말은 비유가 아니었다.
아내는 요양원에서 어르신을 돌보던 손길로 사랑이를 보살폈다.
눈을 닦아주고, 귀를 살피고, 털을 빗겨주었다.
사랑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는
요양원에서 보지 못했던 온전한 미소가 있었다.
아침이면 우리는 안개 낀 둑방길을 함께 걸었다.
사랑이는 우리를 앞서지 않았다.
늘 보폭을 맞추며 따라왔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의 속도를 배웠다.
본능과 책임 사이
사랑이는 집을 잘 지켰다.
밤이면 산에서 내려오는 맷돼지 소리에 짖었다.
울림통이 큰 목소리였다.
‘엉, 엉, 엉.’
우리는 잠을 설쳤다.
이웃들도 그랬다.
“최 선생님, 밤새 짖어서 잠을 못 자요.”
한 집이 아니었다.
여러 집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개가 짖는 것은 본능이었다.
그러나 마을은 공동체였다.
우리는 가족 회의를 했다.
1. 동물을 사랑하는 지인에게 보낸다.
2. 조심하며 계속 키운다.
3. 전혀 다른 곳으로 보낸다.
어느 것도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사랑이는 우리 가족이었으니까.
보내는 사람의 마음
어느 날 퇴근해 돌아오니 사랑이가 없었다.
“사랑이 어디 있어?”
아내는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괴산에서 대안학교 하는 분이… 우리 사정 듣고 잘 키우겠대. 학교로 보냈어.”
아내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눈가가 젖어 있었다.
결정은 그녀가 했지만, 상처도 그녀 몫이었다.
나는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원목으로 지은 집도 함께 가져갔다고 했다.
‘나간 정은 안다’는 말을 그날 처음 실감했다.
다시 만난 사랑
단양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렀다.
빵과 우유를 샀다.
“국장님, 배고프세요?”
“아니… 우리 사랑이 좀 보러.”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물 뒤로 갔다.
“사랑아.”
사랑이는 나를 봤다.
달려오려 했지만 줄이 매여 있었다.
나는 빵을 뜯어 주고, 우유를 부어주고, 물을 가득 채워주었다.
털은 더 자랐고, 얼굴에는 작은 상처가 있었다.
“미안하다. 우리 사랑이.”
그 말은 소리보다 낮게 흘렀다.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몇 번 더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말하지 않았다.
사랑이를 본 아픔은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남는다
사랑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거의 20년이 된다.
가끔 묻는다.
“우리 사랑이… 아직 살아 있을까?”
아내는 여전히 동물을 보면 먼저 눈이 간다.
그녀에게 생명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잠시 맡겨진 인연일 뿐이다.
한때 임종을 지키던 사람이
한 생명을 안고 웃었다가
다시 보내며 울었다.
사랑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떠나보내는 용기라는 것을
우리는 그때 배웠다.
취재를 갔다가 그 방향으로 올 때도
나는 일부러 사랑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
마음이 아파서…
혹시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사랑이랑 같이 걷고 물가에서 뛰어 놀던 그때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전원주택을 떠났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