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아는 개

사랑이와 함께 걷던 계곡 길

by 최국만

3부


괴산은 산이 많은 고장이다.

전체 면적의 80퍼센트 이상이 산지라고 한다.


산을 따라 내려오면 어디에나 계곡이 있다.

겨울을 제외하면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른다.

깊은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라 투명했고, 여름이면 발을 담그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졌다.


우리가 살던 미루마을 전원주택 주변에도 작은 계곡이 있었다.

마을 전체가 50 가구 남짓이니 아침에 한 바퀴 도는 일은 우리 부부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 산책길에는 언제나 사랑이가 함께했다.




물을 사랑하던 아이


어느 여름날이었다.

사랑이를 데리고 계곡가로 갔다.


나는 빈 페트병에 물을 채워 냇가 한가운데로 던졌다.

사랑이는 병이 떨어진 지점을 잠깐 바라보더니 물속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물병을 물고 우리에게 가져왔다.


다시 던졌다.

또 가져왔다.


리트리버가 물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날 처음 실감했다.

그렇게 열 번쯤 반복했을까.


어느 순간 사랑이가 물병을 물고 오더니 우리 앞까지 와서는 슬쩍 큰 돌 아래에 숨겼다.


“여보, 저거 봐. 사랑이가 하기 싫은가 봐. 물병을 숨기네.”


나는 웃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하기 싫은 일에는 저마다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을.




사랑의 방향


사랑이는 영특했다.

리트리버가 원래 지능이 높은 개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아내와 나, 그리고 사랑이.

셋이 함께 걷는 아침 산책길은 우리 부부에게 작은 축제였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누리는 평온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조금 늦게 집에서 나왔다.

나는 먼저 사랑이 목줄을 잡고 길을 나섰다.


“사랑아, 엄마 조금 늦어. 나랑 먼저 가자.”


몇 걸음은 따라왔다.

그러다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는 아스팔트 위에 배를 딱 붙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끌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 엄마 기다리는 거네.”




기다리는 마음


아내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보, 사랑이가 안 가. 빨리 와.”


아내가 다가와 말했다.


“아이고, 사랑이 엄마 기다렸어? 자, 가자.”


그 순간 사랑이는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뒤에서 따라가며 혼잣말을 했다.


“자식…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귀신같이 아네.”


사랑이는 분명 알고 있었다.

누가 자신을 가장 깊이 사랑하는지를.


아내는 오랫동안 노인병원에서 사람을 돌보던 사람이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눈빛을 읽고, 손을 잡아주고,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이다.


표정 하나, 눈빛 하나, 손길 하나에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사랑이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보다 아내를 더 따랐다.


나는 그것이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올 기회


세월이 흘러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미루마을보다 더 넓은 집이었다.

바로 뒤에 산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미루마을에서 키우던 고양이 아롱이와

시추 믹스견 뭉게도 함께 데려왔다.


마당이 넓어 개집도 크게 지어 주었다.


뭉게가 외로울까 봐 읍내 장에서 작은 강아지 하나를 더 데려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별이였다.


아롱이, 뭉게, 별이.


세 마리가 우리 가족이 되었다.


어느 날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말했다.


“여보, 사랑이 있던 대안학교가 다른 곳으로 이사한대.

혹시 우리가 다시 키우겠다면 데려가라고 하더라.”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럼… 우리 사랑이 데려와야지.”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오지 않은 이유


하지만 곧 고민이 시작됐다.


“여기 민가도 거의 없고 마당도 넓으니까 괜찮긴 한데…

뭉게랑 별이가 주눅 들지 않을까?”


아내는 동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사랑이 보고 싶어.

이 넓은 데서 키우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뭉게랑 별이가 힘들지 않을까?”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랑이를 데려오면

이미 우리 집에 자리 잡은 작은 생명들이 위축될지도 몰랐다.


우리는 결국 사랑이를 데려오지 않기로 했다.


결정을 내렸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사랑을 선택하는 일보다

사랑을 포기하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그날 밤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사랑이는 이미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고,

그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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