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자의 3월, 마당 밑에서 들리는 봄의 기척

노련한 정원사의 마음이 머무는 곳

by 최국만



올겨울은 예년보다 확실히 덜 추웠다.

이상기후든 엘니뇨 현상이든, 이유가 무엇이든 포근한 겨울이었다


북카페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산 언덕은

이제 서서히 연둣빛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어제 휴일, 아내와 딸과 함께 인근 카페를 찾았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 위에서

나의 감각은 완연한 봄의 모습이다.

차창 밖 들녘에는 올봄 농사를 위한 퇴비가 뿌려져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는 언제 움직였는지

벌써 밭 가득 퇴비를 펼쳐놓았다.

작년에 고추 농사를 짓고 미처 뽑지 못한 고춧대를 정리하는 손길,


농사의 혁신이라 불리던 멀칭 비닐을 걷어내는 사람들.

트랙터 소리가 들리고 있다.

농촌의 들판은 이미 소리 없이 새봄을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농가에서 사용하는 퇴비는 보통 두 종류다.

가축의 배설물을 섞은 가축분과

농업 부산물을 갈아 환으로 만든 '유박' 비료다.


가축분 퇴비는 특유의 농촌 냄새가 진하다.

도시인들이 맡으면 단 1분도 견디기 힘들 만큼 역하겠지만,

그 냄새는 곧 생명이 자랄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나도 작은 텃밭이 있어 비싸더라도 냄새가 덜한 유박을 주로 쓴다.

조금 더 기온이 올라가면 이 농촌 특유의 냄새와 함께

본격적인 농사의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텃밭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초겨울에 심은 마늘이 제법 싹을 틔워 존재감을 드러낸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브로콜리와 옥수수 싹이 기지개를 켜고 있을 터다.


봄은 농민에게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자 삶의 기반이다.

그래서 우리는 봄을 '희망의 계절'이라 부른다.


북카페에서 보이는 정원의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갈 것이다.

1년 내내 푸른 소나무는 여전하지만,

작년에 겨우 꽃을 피웠던 겹벚나무는 앙상한 가지 끝에

올봄 만개할 기대를 가득 품고 있다.


도열하듯 서 있는 영산홍과 목련나무도

꽃눈을 꼭 쥐고 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나의 아내는 노련한 정원사다.

자격증 가진 이보다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 정원의 모든 생명을 건강하게 지켜왔다.


암투병 중에도 아내는 정원을 바라보며

꽃과 나무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지극한 정성 덕에 우리 정원은 늘 생기가 넘쳤다.

올봄, 아내는 암투병 이후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정원을 돌볼 것이다.

들녘의 흙이 퇴비를 머금고 봄을 준비하듯,

아내의 마음도 정원과 무한한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로컬 라이프의 참맛은

맑은 공기나 자연환경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 자연 속에서 내가 어떻게 생활을 만들고,

누구와 어떤 희망을 가꾸어 나가느냐.


결국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준비된 농부의 밭에서 봄이 먼저 오듯,

부지런히 마음을 일구는 우리 부부의 정원에도

이미 봄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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