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카페에서 나는 아내의 친구를 보았다

암을 이겨가는 아내, 그리고 그녀 곁에 앉은 세 사람의 바늘

by 최국만


카페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3월이었지만 달천강 위로 흰 눈발이 천천히 흩날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페 안에는 올드팝이 흐르고 있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Woman in Love.


20평 남짓한 카페 한쪽 테이블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내 아내와, 아내보다 몇 살 많은 언니, 그리고 아내와 동갑내기 친구.


테이블 위에는 흰 천이 펼쳐져 있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바늘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 땀.

또 한 땀.


조용한 카페 안에서 바늘이 천을 통과하는 움직임이 마치 작은 생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 모인다.

자수공예를 배우기 위해서다.


아내는 현재도 암 투병 중이다.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빠지지 않고 이 자리에 나온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어쩌면 약보다도 사람일지 모른다고.




아내가 괴산에 내려와 살면서 만난 사람들은 참 다양하다.


아내보다 어린 사람도 있고

세 살, 다섯 살, 많게는 열 살 위의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 행복하다.


그래서 늘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밥하고 집 청소할 테니

당신은 친구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와.”




젊을 때의 친구는 다르다.


어린 시절의 친구,

청소년기의 친구.


그때는 떨어지면 못 살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르면 하나둘씩 멀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때의 만남은 쉽지 않다.


이미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가치관과 성격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에 친구가 된다는 것은

젊을 때보다 훨씬 어렵다.




그런데도 이 세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그 이유를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이들은 서로의 감정을 받아 준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을

그대로 존중한다.


그리고 또 하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의 시간을 함께 나눈다.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바늘을 움직이고

세월을 이야기한다.




나는 늘 궁금했다.


어떻게 취미가 같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도 좋아하고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참 큰 복이다.


아내는 지금

민요를 배우고

자수를 놓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민요를 함께 배우는 친구가 있고

자수를 함께 놓는 친구가 있고

도서관에서는 나와 함께 책을 읽는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좋은 사람 몇 명.

그리고 함께 웃을 시간.


그것이면 충분하다.




아내가 표적항암 치료를 받고

수술을 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아내 곁에는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다.


함께 웃어 주고

함께 걱정해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나는 그것이

아내에게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카페 안에서 아내가 나를 발견했다.


“어머, 어떻게 알고 여기 왔어요?”


“어서 오세요. 차 뭐 드실래요?”


나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창밖에는 눈이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흰 천이 펼쳐져 있었다.


세 사람의 바늘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이 들어

이렇게 함께할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내가

오래오래

이 친구들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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