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정집 지하에서 발견된 100여 개의 뱀 박스
“형님, 저예요.”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랫동안 밀렵 현장을 제보해 주던 동생이었다.
“그래, 이제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사업은 잘 되냐?”
“특별한 행사도 없고요… 그저 그래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말을 꺼냈다.
“형님, 다른 게 아니라요. 매포읍 가정집에서 꽃을 주문했어요.
주소를 찾아가 보니까 집 안에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나갔나 싶어서 2층도 올라가 보고 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1층에 꽃을 놓고 나오려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있더라고요.”
나는 무심하게 물었다.
“그래서?”
“지하에 내려가 보니까 창고 같은 방이 있었어요.
근데 형… 이상했어요.”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래서 뭐가 이상한데.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스가 100개는 넘어요.
그리고 옆에 술병도 엄청 많았어요.”
“그래서 그게 뭐냐고.”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그가 말했다.
“형… 뱀이었어요.”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십수 년 동안 전국의 밀렵 현장을 취재했다.
올무에 걸린 고라니, 뱀그물에 잡힌 수백 마리의 뱀, 중국 연변의 반달곰 농장까지 수없이 보았다.
하지만 한 가정집 지하에 박스 100여 개의 뱀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건 단순한 밀렵이 아니라
조직적인 밀거래일 가능성이 컸다.
“형, 아무래도 이상해.
이 사람 밀렵꾼 아니면 전문 땅꾼 같아.”
나는 짧게 말했다.
“취재해야지.”
단양으로 향하다
당시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4주마다 PD 한 명이 전체 방송을 제작하는 구조였다.
이미 3주, 아이템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제보가 사실이라면
그 어떤 아이템보다 중요한 사건이었다.
나는 후배 PD 한 명을 데리고 바로 단양으로 향했다.
가을이었지만 밀렵에는 계절이 따로 없다.
산만 있으면 언제든 밀렵은 벌어진다.
우리는 방송국 로고가 없는 봉고차를 타고 매포읍으로 들어갔다.
먼저 매포읍사무소에 들렀다.
“아이고, 최 피디님이 웬일이세요?”
직원이 반갑게 맞았다.
“지나가다가 차 한잔 마시려고 들렀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백주대낮에 차 마시러 오실 분은 아니잖아요.
취재 건이죠?”
나는 슬쩍 말을 돌렸다.
“이제 가을인데 벌써 밀렵꾼들이 산을 뒤지고 있다더군요.
여기는 어떻습니까?”
직원은 손사래를 쳤다.
“최 피디님이 방송에서 밀렵 취재 나가고 나서
여기 단양은 밀렵꾼들이 아예 못 옵니다.”
그 말은 반가웠지만
제보자가 말한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나는 매포읍 관내 현황도를 하나 받아 나왔다.
수상한 집
제보자가 알려준 주소를 찾았다.
2층 슬라브 집이었다.
매포읍사무소에서 불과 200미터 거리였다.
집에서 50미터만 나가면 큰 하천이 있었다.
뱀을 잡는 땅꾼들이 활동하기 좋은 지형이었다.
우리는 시장통과 주변을 돌며 탐문취재를 했다.
다른 제보자들에게도 연락했다.
“혹시 이 사람 아느냐.”
하지만 모두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다.
우리는 집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잠복할 장소가 필요했다.
골목 하나 건너 맞은편에 2층 양옥집이 있었다.
그 집에서
문제의 집이 정면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곳을 잠복 장소로 정했다.
하지만 취재를 시작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십수 년 취재하면서 제보만 믿고 들어갔다가
실패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보자에게 말했다.
“동생, 네 말은 믿는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확인해라.”
“형… 그걸 내가 어떻게 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어떻게든 다시 들어가서 휴대폰으로 찍어 와.
박스 안에 뭐가 있는지, 뱀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는 난감한 목소리였다.
“형, 그걸 내가 어떻게 하냐고.”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취재를 하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동생, 미안하다.
어떻게 찍어오라고 방법을 말해 줄 수는 없다.
네가 수단껏 찍어 와라.
우리가 하는 일이 뭐냐.
이 아름다운 생태계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아니냐.
이처럼 밀렵이 계속되면
나중에 아이들은 뱀이라는 동물도 모르게 된다.
미안하다.
그래도 찍어 와.”
전화를 끊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방송국 긴급 회의
우리는 일단 방송국으로 돌아왔다.
퇴근 시간이 되기 전
PD와 작가들이 모여 전체 회의를 열었다.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단양 매포읍에서 대형 밀렵 사건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보가 사실이면 규모가 상당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이 사건은 신입 PD와 내가 취재하겠습니다.
그리고 3부작으로 제작하겠습니다.
지금 취재 중인 아이템은
조금 여유를 가지고 진행해도 됩니다.”
회의가 끝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였다.
충격적인 사진
내 휴대폰이 울렸다.
제보자였다.
“형, 나야!
엄청 나.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형 사진 보면 놀랄걸.
지금 보낼게.”
잠시 후 사진이 도착했다.
다섯 장이었다.
나는 천천히 사진을 열었다.
그리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지하 창고 바닥에는
플라스틱 박스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뱀들이 가득했다.
박스 하나에 수십 마리씩 들어 있었다.
벽 한쪽에는
술병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순간 머릿속 계산이 돌아갔다.
이 정도 규모라면
단순한 밀렵꾼이 아니었다.
전국 규모의 밀거래 조직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지하 창고는
마치 뱀 창고 같았다.
이 사건은
내가 지금까지 취재했던 밀렵 사건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 될지도 몰랐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