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대학, 그러나 가징 따뜻했던 저녁
오후 네 시였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회관 교지 편집실로 들어갔다.
이미 편집위원들은 다 와 있었다.
누군가는 원고를 읽고 있었고, 누군가는 교정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의 전공은 제각각이었다.
국문학과, 사학과, 가정학과, 독어독문학과, 무역학과.
그리고 나.
편집위원은 일곱 명.
남학생은 나 포함 둘, 여학생이 다섯이었다.
그 다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지금의 아내다.
교지는 1년에 한 번 발행됐다.
졸업생에게는 마지막 선물처럼,
신입생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기록처럼 배부됐다.
그래서 2학기가 시작되면 편집실은 전쟁터가 된다.
원고 청탁, 삽화 의뢰, 원고 정리, 기획 구성, 편집 회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들.
저녁은 대부분 편집실에서 해결했다.
편집장인 나에게는
아주 작은 활동비가 나왔다.
편집실 운영비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라면 몇 번, 짜장면 몇 번 시켜 먹으면 끝나는 돈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편집장님, 벌써 여섯 시인데요.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까요?”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야, 나 돈 없어.
혹시 쌀 남은 거 있냐?”
“있어요.”
“그럼 밥 해.
내가 식당 가서 김치하고 반찬 좀 얻어 올게.”
나는 학생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줌마, 우리 밥 해 먹는데 반찬이 없어요.
점심때 먹은 김치 좀 주세요.”
“영양사한테 물어봐요.”
식단의 책임자는 영양사였다.
재료도, 칼로리도, 재고도 다 그분이 관리했다.
나는 영양사에게 갔다.
그분은 이미 우리를 알고 있었다.
교지 편집위원들이라는 것도,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게 편집실을 지키는지도.
그날도 김치와 멸치 반찬 몇 가지를
조용히 내어 주었다.
편집실 문을 열었을 때
밥이 막 익고 있었다.
부탄가스 위에서 끓는 밥.
그 냄새.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야, 냄새 좋다.”
“역시 편집장님 최고예요.”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가면 반찬 쥐꼬리만큼 주는데
편집장님이 가면 많이 주잖아요.”
그때였다.
똑똑.
편집실 문이 열렸다.
“짬뽕 국물 가지고 왔어요.
이과두주도 두 병이요.”
아내가 시켰다고 했다. 아내는 대학 때 술 좀 마셨다.
그때는
아내가 아니라
독어독문학과 1학년 편집위원이었다.
“편집장님이랑 다 같이 한 잔 하려고
조금 시켰어요.”
짬뽕이 아니라
짬뽕 국물이었다.
막걸리도 아니고
이과두주였다.
우리는 그 술을
‘파리약’이라고 불렀다.
박카스 병보다 조금 긴 병.
40도짜리 독한 술.
부탄가스 위에서 지은 밥.
얻어 온 김치와 멸치.
짬뽕 국물.
이과두주.
밥공기도 제대로 없었다.
작은 플라스틱 그릇이 전부였다.
“자, 한 잔씩 먼저 마시자.”
한 모금 마셨다.
“캬.”
그리고
짬뽕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 맛.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난했다.
정말 가난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은 따뜻했다.
누군가 말했다.
“편집장님, 오늘 설거지는 하세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래. 오늘은 내가 할게.”
그들과 함께한 시간.
어떤 학생은 1년,
어떤 학생은 2년.
그 짧은 시간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는
긴 영화처럼 흐른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가끔
아내와 중국집에 간다.
“여보, 오늘 뭐 먹을까?”
“짬뽕 먹을까?”
“그래.”
나는 웃으며 말한다.
“이과두주도 한 병 할까?”
짬뽕 국물을 떠먹을 때면
가끔 그 시절이 떠오른다.
가난했지만
사람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젊음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저녁 한 끼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식사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