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오르는 길 끝에서,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본다

남해 보리암, 가족이라는 기도의 자리

by 최국만


보리암으로 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굽이굽이 이어진 도로를 따라 오르는 동안, 나는 문득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떠올렸다.


곧게 뻗은 길은 없었다.

돌아서고, 멈추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던 시간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았다.


이른 아침, 주차장은 아직 한산했다.

나는 앞장을 섰고, 아내와 딸은 뒤에서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습이 참 좋았다.

한때는 내가 이끌던 가족이, 이제는 서로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도의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 드러나는 자리


보리암은 단순한 절이 아니다.

남해 금산 해발 681미터 정상에 자리한 이 암자는,

고려 말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리고

훗날 조선을 세웠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또한 이곳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기도처’로 불린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단순한 관광객보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다.


딸이 말했다.


“아빠, 소원 한 번 빌어보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는 한 가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르는 길에서 드러나는 것들


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는 약 20여 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거리다.


길은 잘 닦여 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내는 숨을 고르며 걸었다.

나는 무심한 척 물었다.


“여보, 힘들면 내려갈까?”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 나도 아직은 걸을 수 있어.”


그 말이 가슴에 남았다.

‘걸을 수 있다’는 말이,

이 나이가 되니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허리에 손을 얹고 서로를 밀어주듯 올라갔다.


그 모습이 꼭

젊은 날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사랑 같았다.




바다 앞에서, 삶을 다시 묻다


정상에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는 바다였다.


섬들이 점처럼 떠 있었다.

마치 부처의 형상이

물 위에 흩어져 있는 듯 보였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애쓰며 살아왔을까.

길어야 80년 남짓한 생을 살면서

왜 그렇게 고통에 집착하고,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쓰는 걸까.


불교에서는 말한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뀔 뿐이다.


나는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각자의 기도, 그러나 같은 마음


딸이 먼저 해수관음상 앞에 섰다.

그리고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는 엄마 건강이 제일 먼저야.”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무슨 기도를 했는지.


40년을 함께 산 사람에게

그 질문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기도는

이미 내가 알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신앙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서의 불교


흥미로운 것은,

우리 가족이 특정 종교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불교의 사유는 점점 더 삶 가까이로 들어온다.


아내는 불교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딸 또한 자연스럽게 불교를 공부하며

삶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의 흐름도 이와 닮아 있다.


신앙을 ‘믿음’이 아니라

‘이해와 사유’로 받아들이는 것.


기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




내가 오늘 빌었던 단 하나의 소원


나는 결국 기도를 했다.


아내의 건강.

그리고 가족의 평안.


그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젊은 날에는

돈도, 성공도, 명예도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사람’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내려오는 길, 우리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보리암을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길이 쉬워서가 아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굽이굽이 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길 끝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그 자체가

이미 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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