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결국, 함께 걸어온 시간의 이름이었다
새벽 5시였다.
나는 습관처럼 눈을 떴다.
집에서는 늘 이 시간에 일어나
아내를 위한 아침을 준비해 왔다.
그 습관이
여행지까지 따라왔다.
이번 여행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아침을 해 먹지 않았다.
모두 밖에서 사 먹었다.
그런데도 몸은
여전히 집에 있는 것처럼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움직이려 했다.
아내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내에게 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은 인기척에도
아내는 눈을 떴다.
“여보, 더 자. 왜 벌써 깼어.”
나는 미안한 마음에 말했다.
“아냐… 내가 깨웠네.
집에서 하던 버릇이 남아서…”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게 익숙해졌나 봐.”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남해를 향해 출발했다.
딸이 말했다.
“아빠, 가는 길에 광양 매화축제 잠깐 들를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월요일 아침인데도
주차장은 만차였다.
나는 예전에 이곳을
취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분석하고 기록해야 할 현장이었지만,
오늘은
그저 바라보고 느끼는
하나의 풍경이었다.
“오늘도 1만 보 넘기지 말자.”
아내를 위해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매화는 완전히 피지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다.
하얀 꽃은
봄날의 눈처럼 내려앉아 있었고,
붉은 꽃은
산에 불을 지른 듯 번져 있었다.
아내는 하얀 재킷을 입고,
딸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 걸음씩 올라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저 풍경은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 인생보다 더 소중했다.
사람은 꽃을 보면
어린아이가 된다.
아내와 딸은
사진을 찍으며 웃었고,
아름다운 곳마다
걸음을 멈췄다.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정상에서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남해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
그 안에 떠 있는 작은 섬들.
그 풍경은
어떤 나라의 절경보다도
더 깊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여보, 중동 못 간 거… 지금 생각하면 잘한 것 같아.”
“그래요… 여기 걷는 것도 힘든데…”
우리는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서로를 향한 이해가 담겨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바다를 향해 열린 공간,
그리고 그 안의 고요.
이곳은
아내를 위한 마지막 쉼이었다.
해질 무렵,
우리는 함께 걸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말은 없었지만
충분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그 모든 말이
그 손안에 있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오늘 하루
세상을 밝히던 빛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여보, 참 고마워.
건강해야 돼.
그리고… 내가 더 사랑해.”
딸이 준비한 작은 케이크,
그 위에 초 하나.
멀리 있는 아이들과는
영상으로 만났다.
“엄마, 건강해져서 너무 고마워요.”
창밖 바다 위로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어디를 갔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였는지가
전부였다고.
3박 4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의 삶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광한루의 소리,
남원의 밤,
매화꽃이 흐드러진 산길,
그리고 이 바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래,
행복했다.
아내가 있었고,
딸이 있었고,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알았다.
사랑이란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의 습관까지 닮아가며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마지막 한 줄
그날 새벽,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결국, 서로의 삶이 습관처럼 스며드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