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기적이었다

유리창에 부딪힌 새 한 마리가 가르쳐준 삶의 방향

by 최국만


함양을 떠나 도착한 곳은 남원의 한 호텔이었다.

우리는 빌라 한 동을 통째로 빌려 하루를 머물기로 했다.


여행지의 저녁은 늘 비슷하다.

밖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아내는 탁자에 앉아 자수공예를 펼쳤고,

딸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아내 옆에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고 있었다.


거실은 넓었고, 전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그 자체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그때였다.


‘탁, 탁, 탁.’


유리창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일반적인 충돌음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둔기로 유리를 내리치는 듯한 소리.


나는 고개를 들었다.


새였다.


날아오던 새 한 마리가

투명한 유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세 번이나 같은 자리를 향해 부딪쳤다.


그리고 그대로 잔디 위로 떨어졌다.



나는 한때 환경 프로그램을 만들며

철새 이동 경로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새들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이동한다.


비행기가 항로를 따라가듯

새들 역시 수천 년 동안 이어온 하늘길을 따라 움직인다.


문제는,

그 길 위에 인간이 유리로 된 장벽을 세워버렸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는

매년 수억 마리의 새가 건물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다.


특히 유리창은

하늘과 숲을 그대로 반사하기 때문에

새들에게는 ‘통과 가능한 공간’으로 보인다.


서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도심 고층건물 주변에서

충돌로 죽는 새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고,

그중에는 천연기념물도 포함된다.


우리는 도시를 세웠지만,

그 위에 날아오던 생명들의 길은 고려하지 않았다.



“여보, 이리 와봐.”


잔디 위에 떨어진 새를 가리켰다.

작은 박새처럼 보였다.


몸이 파르르 떨리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죽는 거 아냐…?”


아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말없이 휴대폰을 꺼내

줌을 최대한 당긴 채 화면을 응시했다.


“아직 살아 있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


유리 충돌을 겪은 새는

대부분 뇌진탕 상태에 빠진다.

잠시 기절하거나, 방향 감각을 잃는다.

그 상태에서 포식자에게 잡히거나

다시 날지 못하고 죽는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간절해졌다.



“여보, 물이라도 떠다 줄까?”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진동에 놀랄까

발걸음조차 죽였다.


그 순간이었다.


‘푸드덕!’


새가 갑자기 날아올랐다.


하늘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저 다시 자기 길을 찾았다는 듯.



그 장면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새 한 마리가

근처 나무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계속 울고 있었다.


주변을 맴돌며,

떨어졌던 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둘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것도

부부일지 모른다.



우리는 늘 큰 이야기만 중요하다고 배워왔다.

전쟁, 정치, 경제, 역사.


하지만

유리창에 부딪힌 한 마리 새의 생과 사가

이렇게 마음을 흔들 줄은 몰랐다.


이전의 나였다면

이 장면을 이렇게 오래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새 한 마리야 뭐…”


그렇게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미세한 것에 반응한다는 것을.


작은 생명 하나,

개미 한 마리,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하나에도

마음이 멈춘다.



“여보… 날아갔다.”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한참을 그곳에 두고 왔다.


이날의 여행에서

가장 깊이 남은 장면은

남원의 풍경도, 호텔도 아니었다.


유리창에 부딪혔다가

다시 날아오른

한 마리 새였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의 길 위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다시 날아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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