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검사‘의 뷰 파인더

아는 만큼 무거워지는 인지의 형벌

by 최국만


내 이름 뒤에는 오랫동안 ‘최검사’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조금은 과장된 별명이었지만, 그 안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방송국에 들어온 지 10년쯤 되었을 때였다.

신입 후배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늘 비슷했다.


“선배님은 아이템만 보시면 바로 구성이 나오신다면서요.”

“4초만 보고도 2분짜리 화면을 만드신다던데요.”


그 말들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내게는 점점 벗어날 수 없는 역할이 되어갔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베테랑’이 된다는 건

단순히 실력이 쌓인다는 뜻이 아니다.

더 깊고, 더 어두운 곳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보이는 만큼만 취재하고,

아는 만큼만 정리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 가지 사실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외면할 수 없다는 것.




1년 차가 그냥 지나치는 장면에서

10년 차의 눈은 멈춘다.


남들은 타협하는 지점에서

나는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했다.


‘최검사’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나는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템 선정, 자료 분석,

관련자 인터뷰, 현장 추적,

그리고 밤을 새우는 편집까지.


이 모든 과정은 매주 반복되었고,

나는 그 톱니바퀴 안에서 점점 더 조여 들어갔다.




현장은 늘 무거웠다.


죽음의 건설 현장에서 들려오던 울음,

영유아원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

고독사 현장의 공기.


그것들은 화면 속 장면이 아니라

내 안에 남는 기억이 되었다.


불법 사설 토토,

사이비 교주,

줄줄 새는 보조금과 비틀린 금융 구조.


하나의 아이템이 끝날 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하나씩 더 알게 되었고,

그만큼 더 무거워졌다.




몇 초의 화면을 위해

며칠 밤을 현장에서 보내던 시간들.


그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틀려서는 안 된다는 압박,

내 이름으로 나가는 방송에 대한 책임,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끝없는 검열.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취재의 범위는 넓어지고,

확인해야 할 진실은 더 깊어졌다.


베테랑 피디의 노동은

몸의 일이 아니라

진실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었다.




방송을 떠난 지 8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가끔,

눈을 감으면 그때의 장면들이 돌아온다.


구제역 매몰지의 냄새,

고속도로 위의 소음,

그리고 편집실의 밤.


32년 동안 이어진 긴장과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화려한 경력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매 순간 나를 깎아 소리를 내게 했던 시간이었다.




지금 나는

괴산의 산자락에서

조금 느린 숨으로 살아간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있다.




시사 프로듀서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비정상’을

내 안으로 끌어들여


그것을 다시 ‘정상’으로 걸러내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태우는 일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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