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탐험의 시대, ‘보존’이라는 최고의 기록
“최 PD, 이제 회항해야 돼! 연료가 부족해!”
서울에서 이륙한 KBS 헬기가
강원도 동강의 험준한 산세 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7월의 동강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오대산에서 발원해 굽이굽이 흐르다
영월에서 서강을 만나는 이 거대한 물줄기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바라본 절벽은
도무지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우리가 찾는 마지막 목적지,
백룡동굴의 입구는 그 짙은 녹음 속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절벽 끝에서 찾아낸 자연의 입구
헬기 기장님의 결단으로 시작된 위험천만한 저공비행.
발아래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릴 듯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절벽 기슭에 숨은 작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렌즈가 줌인(Zoom-in)으로
빨려 들어가며 동굴의 입구를 포착한 순간,
안도감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고수동굴부터 제주도의 용암동굴까지,
전국을 누비며 석회암 동굴의 신비를 담아온
3개월 대장정이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미공개 동굴을 취재한다는 것은
공포와 경외심 사이를 줄타기하는 일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조명 하나에 의지해 발을 내디딜 때,
그곳에는 인간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시간의 예술이 펼쳐져 있었다.
종유관, 석순, 석주가 빚어낸 순백의 풍경은 때
묻지 않은 처녀지의 고결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별이 쏟아지는 동강의 새벽, 그리고 성찰
새벽 2시, 촬영을 마치고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쏟아질 듯한 별이었다.
오염원이 없는 동강의 밤하늘은
별들마저 투명하게 닦여 있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동굴 안은 낮과 밤이 없고,
항온과 항습이 유지되는 정지된 시간의 공간이다.
그 안에서 수만 년을 버틴 종유석들이
인간의 짧은 방문과 조명 빛에 행여
상처 입지는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70~80년대 관광 붐으로 훼손된
수많은 동굴의 비극을 떠올리며,
진정한 ‘탐험’이란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되었다.
생태탐험의 시대, '보존'이라는 최고의 기록
오늘날의 생태탐험 트렌드는 '정복'이 아닌 '공존'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백룡동굴도 일부 구간이
개방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우리가 헬기를 타고 그토록 어렵게 입구를 찾았던 이유는
그곳이 ‘함부로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닿는 순간 필연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록하는 이유는,
그 훼손을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카메라 렌즈에 담았던
그 순백의 종유석들이 앞으로도
그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나길 바란다.
동강의 맑은 물소리와
새벽 별빛 아래서 느꼈던
그 경외심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동강의 아름다움을 어찌 잊으랴.
그 푸른 물줄기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굽이치며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