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시사 프로그램을 스스로 선택한 이유
“국장님,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작가로 방송국에 들어왔어요.
만약 국장님과 이런 시사 프로그램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래? 왜 그렇게 생각했어?”
작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국에 오기 전까지 저는 세상이 그렇게 나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선하지도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나만 열심히 살면 되는 세상이라고요.”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선과 악을 이야기하네. 꽤 철학적인데?”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오늘 청주여자교도소 사전답사를 다녀왔거든요.
그곳에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의 대화는 짧았지만 오래 남았다.
방송국의 하루는 늘 전쟁처럼 흘러간다.
특히 내가 책임지고 있는 시사 프로그램은
더욱 숨 가쁘게 돌아간다.
기획회의, 아이템 선정, 취재 계획 수립, 잠복 취재 장비 준비, 예산 편성, 원고 정리, 그래픽 작업, 제보자 면담, 사전 답사, 현장 취재….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일반 회사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방송국도 겉으로는 같은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선택한 순간
그 시간표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방송은 시계가 아니라
사건과 현실의 시간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이다.
KBS에는 수많은 직종이 있다.
방송직, 기술직, 행정직, 서비스직….
세부적으로 나누면 스무 가지가 넘는 직군이 공존한다.
나는 방송 제작을 담당하는 방송직이었다.
기획과 연출, 때로는 진행까지 맡는 자리.
사람들은 흔히 PD라고 하면 방송 제작을 떠올린다.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라디오 프로그램의 기획과 연출을 총괄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나는 시사교양 PD였다.
PD 다섯 명이 팀을 이루어
다섯 주에 한 번씩 40분짜리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시사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지원하는 PD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은 이 일을 피하려 한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은 흔히 ‘방송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제작하는 PD에게 그것은 꽃이 아니라
가시가 가득한 길이다.
베테랑 PD들조차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망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끝없이 이어지는 법적 분쟁과 소송의 위협.
둘째, 잠입 취재와 강제 취재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위험과 심리적 압박.
셋째, 끝이 보이지 않는 가혹한 제작 노동.
넷째, 권력과 자본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압력.
특히 공영방송일수록 그 압력은 더 무겁다.
나는 30년 동안 그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 네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조폭에게 협박을 당했고
밀렵 취재 중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오른쪽 어깨 인대가 끊어졌다.
폐기물 취재 중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쓰레기 매립장 취재 중에는 미끄러져
악취 나는 침출수에 빠져 피부병이 생겼다.
중국 취재 중에는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얼굴에 침투해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간 적도 있다.
밀렵 취재를 하다
고라니를 잡은 집에서 그 집 여인이 칼을 들고 달려든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밤에는
조폭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말했다.
“죽여 버리겠다.”
부모님도 늘 걱정하셨다.
“국민아, 너 그 프로그램 왜 하냐.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명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가족들을 걱정시키는 일을 하느냐.
제발 그만둬라.”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위험하고 힘든 프로그램을 스스로 선택했을까.
나는 KBS 15기 공채 아나운서였다.
3년 뒤 PD로 전직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사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다.
주저함은 없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동네 어른들이 화투를 치는 모습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한 뒤
나는 스무 곳이 넘는 공장을 전전했다.
그곳에서 나는
약자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가난과 노동,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억울함.
그 경험들이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프로그램이었고
나는 그 일을 먼저 했을 뿐이다.
환경 취재를 오래 하면서
환경운동연합으로부터 녹색언론인상을 받았다.
그때 한 기자가 물었다.
“환경 취재 오래 하셨는데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먼저 했을 뿐입니다.”
힘들었지만
나는 그 일이 좋았다.
좋아서 하는 사람을
누가 따라오겠는가.
그래서 나는
30년을 그 자리에서 버텼다.
어느 날 밤
좁은 편집실에서 작가와 함께 밤을 새우고 있었다.
모니터 속 화면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작가가 조용히 말했다.
“국장님… 이제 알겠어요.”
“뭘?”
“왜 사람들이 시사 프로그램을 두려워하는지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어?”
작가는 한참 침묵하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국장님이 하는 거군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니터 속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선과 악이 뒤섞여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기록해야 했다.
나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