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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종이의 숨소리가 나를 멈춰 세웠다

말 못 하는 청년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나는 가슴으로 들었다

by 최국만



기종이 집 뒤에는 해발 400미터 남짓한 산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그 산을 기종이와 함께 오른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십살 청년,

그리고 그를 돌보는 나,

우리는 말 대신 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기종이는 키 170센티미터에 몸무게는 90킬로그램.

내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졌지만,

그땐 기종이의 몸이 무거웠다.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집에서 홀로 지내는 몇 시간,

먹을 것밖에 할 일이 없었고,

그것이 기종이의 몸을 망치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기종이와 악수로 하루를 열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조용히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도 이 아이를 평안하게 지켜주세요.”

그리고 나무 사이로 이어진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처음 산을 올랐던 날이 생각난다.

초봄이었다.

기종이는 새싹을 보고 웃었고,

나는 그 아이의 눈길 따라 작은 들꽃과 나무 이름을 알려줬다.


그런데 낮은 언덕을 오르던 기종이의 숨이 너무 가빴다.

말은 없지만, 그 표정과 동작이 말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기종아, 선생님은 너보다 서른 살이나 많지만

나는 잘 올라오잖아. 너 왜 이렇게 힘들어?”


그는 아무 말 없이

한 발, 또 한 발,

아득하게 보이는 정상을 향해 무겁게 발을 들였다.


그날은 코스를 줄여 집으로 돌아왔다.

체력이 떨어졌겠지, 배가 많이 나와서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기종이는 작은 오르막에서도 숨이 턱턱 막혔다.

그 상태는 일주일 내내 반복됐다.


나는 불안해졌다.

그 침묵 속에 무언가 다른 신호가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질병 검색을 해봤다.

그리고 다음 날,

기종이를 데리고 읍내 병원으로 향했다.


당뇨 수치를 측정하던 간호사가 말했다.

“어… 이거 측정이 불가로 뜨네요.”

나는 멈칫했다.

결국 병원에서는 기종이에게 당뇨 진단을 내렸다.

꽤 진행된 상태였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말했다.

“이전에도 이런 증상이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약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는 충격 속에서 생각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기종이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말하지 못하는 기종이.

증상을 호소할 줄 모르는 청년.

그의 아픔을 가족도, 이전 활동지원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숨소리를 들었고,

그 발걸음에 묻은 신호를 느꼈다.


약을 처방받고, 약국에서 한 달 치 약을 받아

다시 연풍으로 돌아오는 길.

기종이는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운전대 위에 손을 얹은 채,

말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켰다.


가슴 한 구석이,

말없이 뻐근했다.


“기종아,

선생님이 너 병원 데리고 다니고

약도 잘 챙겨줄게.

우리, 꼭 이 병 고치자.”


기종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는 듣고 있었고,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걸.


지금 기종이는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다.

당뇨 수치도 많이 안정되었고,

산길도 예전보다 훨씬 가볍게 걸어간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기종이의 몸에 남은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기종이를 돌보는 내 삶 또한

단순한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나는 매일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기종이가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게 해 주세요.

내가 기종이를 통해

사람을 배우게 해 주세요.”


기종이의 숨소리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기종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기종이에게서 인간을 배우고 있었다.


장애는 약함이 아니다.

기종이의 고요한 몸짓은

세상 누구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프다는 것을,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살고 싶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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