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청년에게 건넨 한 끼의 위로
짜장면과 밥 한 공기
기종이는 차를 탈 줄 모른다.
돈을 쥐어줘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 그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본 적도,
제대로 된 음식을 사준 적도,
그렇게 “어디에 데려가 준 적”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 갔다.
작은 외출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쩌면 한 세계의 경계선을 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짜장면 먹어봤어?”
내 물음에 그는 엽은 미소만 지었다
내가 모를 아리송한 미소였다
‘지금 너무 좋다’는 표현 같았다.
짜장면이 나오자마자 볼이 메이도록 허겁지겁 먹어대는
그를 바라 보기만 했다
아직 면그릇에 젓가락도 넣지 않은 나를 보며
그는 눈빛으로무언가를 호소했다.
옆 테이블에서 남은 짜장면 소스에 밥을 비벼 먹는 모습을
쳐다보고 자기 면 그릇을 쳐다보는 것을 반복했다.
그는 밥을 비벼 먹고 싶다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밥 한 공기를 추가해주자
그것도 역시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나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그는 짜장면을,
이토록 맛있게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도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지적장애가 있다.
그 집안에서 짜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아마 사치였고, 먼 것이었고, 꿈같은 것이었을지도.
며칠 뒤,
나는 기종이에게 드라이브를 시켜줄 요량으로 고속도로를 2시간 달렸다.
용인시에 도착한 우리는 조용한 카페로 갔다.
그에게 카페는 처음이었다.
에스프레소 기계 소리, 잔잔한 음악, 낯선 테이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나는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넸다.
그는 빨대로 쉬리릭 얼음 소리가 나도록
한 번에 꿀꺽 마셔버렸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가 당연하듯 즐기는 카페라는 공간,
천천히 음미하는 커피 한 잔.
그에게는 처음 겪는 의식이었고,
나는 그 첫 경험의 동반자였다.
내가 깨달은 건 이것이었다.
처음으로 카페라는 공간에 데려간 사람.
처음으로, “네가 소중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알려준 사람.
그는 언어장애가 있는 지적장애인이기 때문에 말을할 수 없다.
말 대신 표정과 행동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한 번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과 식사 속도는 이미 다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돌봄은 시간을 떼어주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일이라는 것을.
그가 처음인 그 모든 순간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날, 한 그릇의 짜장면은 그에게 세상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와 함께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다.
기종이를 만난지 벌써 3년이 됐다
이렇게 기종이와의 세상 탐험은 3년간 계속 되고있다.